낙장불입

by 수인살롱

집 근처에 5일장이 서는 날이다. 설 연휴에 먹을 식재료를 사러 시장에 갔다. 설 대목이 실감났다. 시장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로 시장이 북적였다. 표고버섯을 한 봉지에 6천 원을 주고 샀다. 마트보다 싱싱하고 양도 많고 저렴해서 내심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한 바퀴 돌다 보니 반대편에서는 표고버섯 한 봉지가 5천 원이었다. 아뿔싸. 뭔가 엄청 손해 본 기분에 언짢음이 올라왔다. 마트 같았으면 나올 때 한꺼번에 계산을 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물건은 빼기도 하는데 시장은 그게 안 된다. 각각의 상인에게 바로바로 결제를 하고 사기 때문에 물러 달라고 할 수가 없다. 천 원에 마음이 상했다.


천 원. 큰돈은 아니다.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 돈이다. 그런데도 그 천 원에 패배감이 든다. 이미 표고버섯은 돈 주고 샀고 식탁에 올려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데 천원 더 비싸게 주고 샀다는 사실에 마음이 상한다. 나는 버섯을 산 것이 아니라 ‘비교’를 산 셈이 되어버렸다.


낙장불입. 화투판에서 나온 말이라지만, 이미 내려놓은 패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선택의 순간이 지나가면 그 선택은 나의 것이 된다.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도, 다시 시장을 한 바퀴 돌아도, 이미 건넨 천 원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 마음속에서 계산을 반복한다. ‘조금만 더 둘러볼 걸.’ ‘왜 성급했을까.’ 지나간 선택을 붙잡고 후회라는 이자를 붙인다.


인생의 많은 순간이 그렇다. 직장에서의 결정, 인간관계에서의 말 한마디, 물건 하나를 고르는 일까지. 그때는 최선이라 믿고 내린 선택인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더 나은 대안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은 늘 비교할 거리를 내민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끝난 판 위에서 계속 패를 고치려 든다.


하지만 낙장불입의 태도는 후회를 금지하라는 말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시간을 잘 살아내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6천 원짜리 표고버섯을 샀다면 그 버섯으로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하면 된다. 천 원의 차이는 맛으로 만회하면 된다. 이미 내려놓은 패를 탓하기보다, 그 패로 이길 방법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어른스러운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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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한복판에서 천 원에 마음이 상했던 나는 집에 돌아와 표고버섯을 손질했다. 물에 살짝 헹구고, 기둥을 떼어내고, 먹기 좋게 썰었다. 팬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소리를 들으니 천 원의 아쉬움은 어느새 사라졌다. 결국 나를 배부르게 할 것은 가격이 아니라 요리하는 나의 손길이었다.


오늘도 우리는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이미 내려놓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지금 손에 쥔 것으로 최선을 다해보자. 인생은 환불 창구가 없는 시장 같지만, 대신 다시 요리할 수 있는 기회는 늘 우리에게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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