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나씩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좋게 말하면 루틴이 잡힌 것이고, 나쁘게 보면 강박감이다. 안 쓰면 화장실에 다녀와 뒤처리를 안 한 느낌처럼 찝찝하다. 그런데 막상 쓰려니 막막하다. 써야 한다는 생각에 ‘쓰기’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니, 요즘은 ‘읽기’에 들이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하루 10분씩 아침에 책을 읽던 루틴은 근무환경이 바뀌면서 깨졌다. 안 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핑계도 조금 섞여 있다. 쓰기와 읽기의 균형이 깨진 탓일까. 글감이 더 부족하게 느껴진다. 내 속에서 꺼낼 재료가 바닥난 느낌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고, 생각을 확장하던 채움의 시간이 사라지자, 없는 살림에 자꾸 꺼내 쓰기만 하는 형국이 되었다. 밑천이 드러나는 건 순식간이다.
독서가 부족해지면 몇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 사고가 반복된다. 나만의 경험과 생각 안에서만 맴돌다 보니 표현은 비슷해지고 관점은 좁아진다. 둘째, 언어가 메말라 간다. 새로운 어휘와 문장 구조를 접하지 못하면 문장은 단조로워지고, 설득력도 약해진다. 셋째, 확신은 커지는데 근거는 빈약해진다. 읽지 않으면 타인의 논리와 부딪힐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에게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사유의 안전장치다.
왜 독서는 필요할까. 첫째, 간접 경험의 확장이다. 우리는 한 번의 삶만 살 수 있지만, 책을 통해 수백, 수천 개의 삶을 엿본다. 둘째, 사고의 깊이를 더한다. 잘 쓰인 책 한 권은 한 사람이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 응축된 생각을 짧은 시간 안에 흡수하는 일은 지적 축적의 지름길이다. 셋째, 균형 감각을 길러준다. 나와 다른 의견을 접하는 일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사고를 단단하게 만든다. 쓰는 사람이 읽지 않으면, 결국 자기 복제에 머무를 위험이 크다.
통계청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하는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최근 조사에서는 성인의 연평균 종이책 독서량이 한 자릿수 권 수준으로 나타났다.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비율도 절반에 가깝게 보고되었다. 읽지 않는 사회에서 읽는 사람은 점점 더 소수가 된다. 그래서 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해진다.
한편 독서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종이책 독서율은 줄어드는 반면 전자책과 오디오북 이용률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이동 시간에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 짧은 시간에 핵심을 전달하는 요약 콘텐츠, 북튜브와 독서 커뮤니티 활동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완독보다 ‘경험’ 중심의 독서가 늘고, 깊이 읽기보다 빠르게 소비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흐름을 탓하기보다, 그 안에서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다.
이번 설 연휴는 9일간으로 꽤 긴 시간이다.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날 외에는 책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도서관에 가서 대여 가능한 최대치로 책을 빌려와야겠다. 갑자기 독서 욕구가 솟구친다.
읽기는 채움이고, 쓰기는 꺼냄이다. 채우지 않으면 꺼낼 것도 없다. 나무가 자라려면 뿌리로 물을 빨아들여야 하듯, 글도 읽기로부터 영양을 얻는다. 쓰기에 몰두하느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읽는 시간은 결코 돌아가는 길이 아니다.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시간은 나를 성장시킨다. 더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넓게 생각하고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읽고, 채우고, 다시 쓰는 일. 그 단순한 순환이 나를 조금씩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