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과 배려의 경계
실적 집계 업무 하나를 인수인계 받았다. 중간중간 의문이 드는 부분을 질문했다. 기존에 이 일을 하던 사람도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둘이서 정확한 답변을 못 찾고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그런데 저 건너편에서 조용히 일을 하고 있던 다른 동료가 툭 한마디를 던진다. 꽤 도움이 되는 답변이다. 안 듣고 있는 것 같았는데, 손으로는 타이핑을 하며 자기 일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귀는 열어놓고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자꾸 헛바퀴를 도니 답답해서 끼어들어 답이 될 만한 이야기를 건넨 것이다. 고마웠다. 그 한마디 덕분에 엉켜 있던 실타래가풀렸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예전에 한 번은 팀원이 맡은 일을 두고 내가 먼저 나서서 방향을 제시해 준 적이 있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보기엔 분명 비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건 이렇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하고 말을 보탰다. 그때는 선의였다. 그런데 돌아온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이미 나름의 계획과 맥락이 있었는데, 내가 괜한 참견을 한 것이다. 도와준다고 생각했지만, 상대에게는 자신의 방식을 무시당한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한 발 물러서서 묻게 되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라고. 상대에게 필요하지 않은 개입은 오지랖이 된다.
엊그제 딸아이가 다이소에서 사다 준 하늘색 때밀이 타올을 오늘 수영장에서 개시했다. 오랜만에 때타올로 피부를 문지르니 까끌까끌한 마찰감이 주는 쾌감이 있었다. 구석구석 문지르다가 등은 손이 닿지 않아 낑낑거렸다. 위아래 손이 닿는 부분까지만 싹싹 문지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등 밀어드릴까요?” 하고 말을 건넨다. 같이 수영을 다니니 안면은 있다. 가끔 인사도 나누고 말도 섞는 사이다. 하지만 이름도, 나이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어떤 색깔의 수영복을 입고 수모와 수경을 쓰는지로 구분할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등을 밀어주겠다고 하니 잠깐 멈칫했다. 사실 나는 내심 누가 내 등 좀 밀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속마음을 들킨 듯해 오히려 머뭇거렸다.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등을 내밀었다. 벅벅벅벅, 위아래로 양옆으로 어찌나 세게 등을 밀어주던지. 따갑고 아팠지만, 성의껏 힘을 다해 밀어주는 그 마음이 느껴져 아무 말 없이 참았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호의는 오지랖이 된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바라던 타이밍에 누군가 건네는 손길은 배려가 된다. 문제는 그 경계선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선 넘었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배려를 오해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경계를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묻고 확인하는 태도, 그리고 건네진 손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다.
수영장에서 기꺼이 등을 밀어준 그분 덕분에 오늘 내 등은 묵은 때를 벗겨내고 한결 가벼워졌다. 그 호의를 내가 “괜찮아요”라며 거절했다면, 그 배려의 손길은 오지랖이 되어버렸을것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도, 그 손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 필요하다. 세상은 그렇게 주고받으며, 상호보완적으로, 상호의존적으로 돌아간다. 오늘 나에게 기꺼이 손 내밀어 준 그분도 고맙고, 부끄럽지만 등을 내어준 나도 잘했다고 생각한다.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내가 그 분의 등을 한번 밀어줘야겠다.적당한 타이밍을 잘 맞출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