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양말

나는 무엇을 꿰매고 있는가

by 수인살롱

외출 준비를 하며 양말을 신는데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에 구멍이 났다. 왼쪽 엄지발가락 쪽에 조그만 구멍이다. 옆에서 빨리 나가자고 보챈다. 급한 대로 왼쪽 양말과 오른쪽 양말을 바꿔 신었다. 엄지발가락의 구멍을 새끼발가락 쪽으로 옮겨 구멍 크기가 좀 작아 보이게 임기응변 했다. 손바느질을 할 줄 모른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맬 자신이 없다. 시내에 나간 김에 양말 두 켤레를 만원 주고 샀다. 긴 양말의 조그만 구멍 하나 때문에 버릴 생각하니 짧은 발목 양말 한 켤레를 버리는 것보다 유독 아깝다. 바늘과 실조차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으니 어찌 손 쓸 방법이 없다. 옷수선집에 가기도 괜히 부끄러워 결국 친정엄마의 손을 빌렸다. 아무 말 없이 슬쩍 양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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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이 넘은 엄마는 조용히 바늘에 실을 꿰었다. 손끝에 망설임이 없다. "사람이 두루백군이 되어야지. 양말 바느질도 하나 못하고 쯧쯧쯧"하신다. 두루백군. 팔방미인과 비슷한 뜻으로, 두루두루 모든 걸 다 잘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엄마가 자주 쓰시는 말이다. 옛날에는 기술과 문명이 덜 발달했으니 자급자족을 해야 했고,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기능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옷을 지어 입고, 단추를 달고, 양말을 꿰매는 일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였다.


하지만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지금은 각자의 분야를 갖고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바느질을 못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다. 대신 우리는 다른 영역의 전문가가 되어 간다. 두루두루 다 잘하는 두루백군은 점점 사라진다.이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이 내 전문 분야인지 묻게 된다. 일반적인 지식도, 전문적인 지식도 어중간한 어중뱅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바느질은 못하지만 다른 것을 꿰매고 있다. 사소한 일상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고, 작은 구멍 같은 사건을 붙잡아 생각을 이어 붙이고, 문장으로 꿰어 하나의 글로 만드는 일. 구멍 난 양말을 뒤집어 신는 임기응변에서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으로 사고를 확장시키는 일. 바늘 대신 펜을 잡고 삶을 꿰매고 있는 사람이다.


전문성은 처음부터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조금씩 해보고, 조금씩 쌓이다가, 어느 날 돌아보면 한 줄기가 되어 있는 것. 남들보다 쉽게 오래 붙들 수 있는 것, 시간을 써도 아깝지 않은 것, 반복해도 지치지 않는 것. 내게 그것은 결국 글쓰기다. 아직은 어디 내세울만큼 대단하지 않지만, 분명 나는 무언가를 꿰매고 있다.


엄마 세대의 두루백군은 손으로 세상을 수선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생각을 수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영역을 찾는 일은 이렇게 작은 구멍 하나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바늘로 구멍난 양말을 꿰매지는 못하지만 오늘도 한 문장을 꿰매며 나는 한뼘 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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