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힘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데려오고, 좋은 답은 좋은 관계를 만든다.

by 수인살롱

오늘 『제가 쓰는 챗GPT는 당신이 쓰는 챗GPT와 전혀 다릅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인공지능에게 어떻게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답변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올바른 질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프롬프트를 구체적으로 쓰는 사람과 막연하게 묻는 사람의 결과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책은 인공지능에게 효율적인 질문을 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일상에서 얼마나 좋은 질문을 하고 있을까. 나는 정말 상대가 잘 대답할 수 있도록 묻고 있을까"가 궁금해졌다.

나는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그것을 강압이나 비난으로 받아들였던 순간들이 있다. 특히 가족에게. 아이가 어릴 때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숙제했어?” 숙제를 했는지 안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그 말이 ‘너 숙제 안 했지?’, ‘또 미루고 있는 거 아니야?’ 질문이 아니라 의심처럼. 확인이 아니라 압박처럼 들리는 질문이었다. “오늘 숙제는 뭐가 제일 어려웠어?” 혹은 “엄마가 도와줄 건 없어?”라고 물었다면 대화의 방향은 달라졌을 것이다. 앞의 질문이 닫힌 문이라면, 뒤의 질문은 열린 창문이다. 닫힌 질문은 예, 아니오로 끝나고, 열린 질문은 생각과 감정을 꺼내 놓게 만든다.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 뒤늦게 깨닫는 어리석음이 안타까울뿐이다.

직장에서도 팀장이 “왜 아직 보고서가 안 올라왔죠?”라고 질문하면 팀원은 사실상 질책으로 받아들인다. 방어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보고서 진행 상황 공유 해 줄래요? 혹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질문은 협업의 신호가 된다. 같은 사실을 확인하는 말인데도 질문의 구조와 어조가 전체 맥락을 바꾼다.

질문은 사고의 깊이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 “왜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까?”라는 질문은 이미 인간을 비합리적 존재로 전제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선택에는 어떤 맥락과 제약이 작용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연구의 방향은 달라진다. 전자는 판단에서 출발하고, 후자는 이해에서 출발한다. 질문은 전제를 품고 있다. 질문의 틀이 곧 사고의 틀이다.

“이 이론은 틀린 것 아닌가?”라는 질문은 반박을 준비한다. 반면 “이 이론은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확장과 보완을 가능하게 한다. 질문 하나가 논쟁을 만들기도 하고, 학문적 진전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질문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사고의 설계도다.

일상에서 우리는 질문과 답변을 통해 수없이 오해를 만들기도 하고, 놀라운 확장을 경험하기도 한다. 배우자가 늦게 귀가했을 때 “왜 이렇게 늦었어?”라고 묻는 순간, 대화는 이미 방어와 해명의 구조로 들어간다. 하지만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먼저 묻는다면, 늦은 이유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질문이 관계의 방향을 정한다.

요즘은 인공지능 시대다. OpenAI가 만든 ChatGPT처럼 대화형 AI는 우리 일상에 깊게 들어왔다. 이제는 ‘질문을 잘하는 능력’이 하나의 역량이 되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말도 생겼다. 막연히 “좋은 글 써줘”라고 말하는 것과, 목적과 대상, 톤과 분량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질문의 정교함은 더 중요해진다.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잘하려고 애쓰다 보니 오히려 인간에게 묻는 방식을 돌아보게 된다. AI에게는 구체적으로, 친절하게, 맥락을 설명하며 묻는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성급하고 단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 기술 앞에서는 겸손해지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익숙함에 기대어 함부로 묻고 있는 건 아닐까 반성이 된다.

좋은 질문은 세 가지를 품고 있다. 상대에 대한 신뢰, 이해하려는 태도, 그리고 열린 결말. 답을 정해 놓고 묻지 않는 것. 상대가 말할 공간을 남겨 두는 것. 질문은 칼이 될 수도 있고, 다리가 될 수도 있다.가까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에 이 질문은 확인인가, 추궁인가. 이해하려는가, 판단하려는가. 상대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질문인가를 먼저 고민해보려고 한다.

질문은 정답만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지키고, 생각을 넓히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있다. 오늘 내가 던지는 한 문장의 질문이 누군가의 마음을 닫게 할지, 열게 할지 모른다. 그러니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정확하게 묻자.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데려오고, 좋은 답은 좋은 관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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