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다 해몽, 해몽보다 마음

by 수인살롱

평소에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깊이 잔다는 뜻이니 나쁘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잠에서 막 깨어날 즈음, 기묘한 꿈을 꿨다. 시커멓고 징그러운 거머리가 나오는 꿈이다. 생각만 해도 찝찝한 존재. 예쁜 상징도 아니고, 상쾌한 이미지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잠이 덜 깬 채 양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기억나는 장면들을 급히 적어 내려가며 꿈해몽을 찾아봤다. 해석은 애매했다. 어떤 글은 재물운과 횡재수가 들어온다고 했고, 또 어떤 글은 에너지와 감정소비가 많이 생기게 되니 주변 인간관계를 조심하라는 경고라고 했다. 길몽과 흉몽 사이를 오가는 애매한 설명들. 꿈이라는 게 원본 파일처럼 정확히 저장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기억나는 몇 조각만으로 해석을 끼워 맞추려니 백 퍼센트 들어맞을 리 없었다. 그야말로 갖다 붙이기 나름이었다.

나는 은근히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거머리가 붙는 건 나쁜 기운이 빠져나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억지로 긍정의 문장을 끌어다 붙였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찜찜했다. 거머리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비호감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저녁 무렵 마음 상하는 일이 두 가지 생겼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도 있기 때문에 상세한 내용은 적기 어렵다). 하나는 일상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작은 말다툼이었다. 내가 조금 예민했을 수도 있다. ‘속이 좁았구나’ 하고 스스로를 달래며 넘기려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일은 달랐다. 꽤 충격적이었다. 배신감과 실망감이 크게 밀려왔다. 그동안 나를 속여왔다는 사실에 뒷통수를 쎄게 얻어 맞은 듯 뻥쪘다.

그 순간 거머리 꿈이 떠올랐다. ‘그래서 거머리 꿈을 꿨나?’ ‘오늘 일진이 안 좋은 건가?’ 현실의 사건을 꿈과 연결 짓고 있었다. 꿈이 예고편이었던 것처럼. 마치 모든 불쾌한 감정의 원인을 꿈으로 돌리면 조금은 덜 상처받고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우리는 왜 꿈을 꾸는 걸까. 과학적으로는 낮 동안의 기억과 감정을 정리하는 뇌의 작업 과정이라 한다. 무의식에 눌러 담아둔 불안, 걱정, 욕망이 상징으로 변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거머리는 오늘 벌어질 사건의 예언이 아니라, 이미 내 속에 내재되어 있던 이름모를 불안이었을지도 모른다.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 관계 속의 미묘한 긴장, 말하지 못한 감정적 서운함이 꿈의 재료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꿈해몽은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점괘라기보다, 지금 내 마음 상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그래서 같은 꿈이라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실제 사건보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거머리 꿈 때문이야’라고 꿈을 탓하며 하루의 나쁜일들을 바깥에서 원인을 찾으려했다. 꿈은 핑계일 뿐이었다. 상처받은 건 현실의 나이고,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는 오롯이 내 몫이다. 나쁜 꿈을 꾸었다면 내 마음이 보내는 신호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요즘 좀 지쳤어.’ ‘관계를 다시 돌아봐.’ ‘상처를 그냥 넘기지 말고 들여다봐.’ 꿈을 긍정으로 바꾸는 일은 억지로 길몽이라 우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를 돌볼 단서를 찾는 일이다.

거머리는 여전히 비호감이다. 하지만 꿈이 하루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아니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다만 꿈을 통해 내 마음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어야한다. 하루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그 꿈을 해석하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꿈 보다 해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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