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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하다 Mar 27. 2024

글쓰기를 통해 여성성을 해방시킨 프랑스 작가

엘렌 식수와 여성 문학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한 문학 작품이 페미니즘 논란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여성 입장에 편향된 작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논란의 자세한 쟁점을 뒤로하더라도, 요즘에는 여성 문학이 매우 활발하다. 여성으로서의 개인적인 경험과 삶, 그리고 여성이 느끼는 사회적 차별과 부당함을 다룬 작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남성 문학(?)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남성을 주인공으로 그의 개인적인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야기는 상상만 해도 재미가 없다. 여성 문학 작품을 접할 때마다 가끔 궁금해진다. 이런 작품들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물론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읽혀왔지만, 오늘날 여상 문학의 실질적 기틀을 마련한 작가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프랑스의 작가이자 이론가인 엘렌 식수Hélène Cixous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현재까지도 여성 문학 분야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녀의 작품과 이론은 여성의 목소리와 경험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학적 표현을 모색함과 동시에 성별, 정체성, 권력 구조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그녀가 주장하는 이론의 중심에는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이라는 개념이 자리한다. 이는 여성은 자신의 경험을 자신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억압과 제한에서 벗어나 여성들의 권위와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엘렌 식수



엘렌 식수Hélène Cixous는 1937년 6월 5일,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알제리에 살았으며, 프랑스식 교육을 받았다. 식수는 알제리와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으며 문학과 철학, 언어학에 대한 그녀의 폭넓은 관심을 일찍부터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면서 문학, 여성학, 심리학 분야의 강의를 통해 페미니즘 이론의 기반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활동하던 1960 ~ 70년대에는 프랑스와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변화가 활발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식수는 그녀의 에세이 《메두사의 웃음Le Rire de la Méduse》을 통해서 여성의 목소리와 경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학적 표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여성적 글쓰기'이라는 개념을 발표했다.




엘렌 식수




엘렌 식수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녀의 개인적 경험과 교육, 그리고 그녀가 살아온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알제리와 프랑스에서의 생활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식민지주의, 이주자 차별,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녀의 작품 전반에서 드러난다. 유대인,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경험은 이러한 소외와 차별,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여성 문학에 집중해서 이야기하면 그녀의 작품은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중심으로 하는 문학 형식을 제시했다. 지금은 '여성문학'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 그녀의 주장은 매우 새로운 접근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경험과 신체를 중심으로 하는 글쓰기 방식을 제시했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언어와 문학 구조에서 벗어나, 여성들의 정체성, 성적 경험, 감정을 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의미했다. 그녀는 '여성적 글쓰기'가 비선형적, 다의적, 그리고 직관적인 특징을 가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여성의 다양한 목소리와 경험을 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엘렌 식수의 대표작 《메두사의 웃음Le Rire de la Méduse》, 프랑스어판





《메두사의 웃음》에서 이야기하는 '여성적 글쓰기'는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언어와 문학적 구조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설명했듯이, 식수는 여성이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야기의 대상이 바로 여성이 스스로 겪게 되는 사회적 차별, 성적 경험, 그리고 감정적 표현인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여성 스스로의 자기 발견과 자율성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그녀의 주장은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그 경험을 글로 표현하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사회적으로 부여된 성 역할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의 창조적인 힘,

자율성의 상징


식수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여성의 창조적인 힘을 자율성의 상징으로 활용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뱀인 괴물로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은 모두 돌로 만들어 버리는 공포의 대상인 존재이다. 하지만 식수는 이 이미지를 전복하여 메두사의 웃음을 여성의 강력한 자기표현과 창조적인 힘의 상징으로 재해석해 냈다. 여성들의 경험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할 때, 그들은 사회적 억압과 제한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언어와 권력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식수는 전통적인 언어가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을 반영하고 재생산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여성이 자신만의 언어와 글쓰기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두사의 웃음



여성 문학의 황금기,

'여성적 글쓰기'는

현대 여성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을까?


개인적으로 식수가 이야기한 '여성적 글쓰기'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경험들을 표현함으로써 변화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글이라는 이성적인 매체를 채택함으로써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 보인다. 여성의 경험이 문학적 소재로 자리 잡게 되었고, 여성들의 표현 방식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선 가장 큰 부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점이다. 여성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동시에 자신들의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정의하게 되었다. 물론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그 세상이 극히 개인적이거나 편향적일 수도 있지만, 다양함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권리를 적극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의 신체적 경험에 대한 금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식수는 여성의 경험과 몸, 욕망 등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그녀의 시선은 여성의 성적 경험과 자신의 신체를 솔직하고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그 경계를 확장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한계의 확장은 여성 스스로의 자존감을 올리고 죄책감과 같은 사회적 제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




엘렌 식수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Ever, Rêve, Hélène Cixous』에버, 드림, 엘렌 식수스




여성성의 표현


특히 식수의 여성의 신체를 글쓰기의 중심적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을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그녀에 따르면, 여성의 신체는 사회적, 문화적 구조에 의해 오랫동안 억압되고 왜곡된 경험을 담고 있는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성의 자유를 위해 전통적인 언어 구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여성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언어가 사회적 권력 구조를 반영하고 재생산한다고 보았다. 전통적인 언어가 남성 중심적인 관점과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성의 글쓰기를 통해서 권력 구조 내에서 여성의 위치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성의 표현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엘렌 식수



'여성적 글쓰기'

페미니즘 운동


엘렌 식수의 이론은 다양한 의미에서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과 예술 작품의 창작을 촉진하였고, 이로써 여성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학문적이고 문화적인 논의를 이끌어냈다. 식수의 작업은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를 재구성하는 방식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다. 이러한 방식은 지금까지도 여성학,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확장되고 있다.


그녀의 이론은 여성의 표현의 자유를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사회와 문화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식수의 이론과 작품은 여성이 자신의 경험과 실존을 깊이 있고 복잡하게 탐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엘렌 식수




그녀의 작품과 이론은 여성 문학과 여성성의 자유를 확장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우리고 겪었던 것처럼 비판과 논쟁의 대상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일부는 그녀의 접근 방식이 그녀가 제시하는 여성성, 글쓰기,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이해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일부 비평가들은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가 주로 서구 중심의 경험과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다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 배경을 가진 여성들의 경험은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녀의 이론이 경제적, 계급적 차이에 의한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부분도 지적했다. 모든 여성이 같은 수준의 자유와 자원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식수의 접근 방식은 특정한 여성 집단의 경험이 우선시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론은 문학적 혁신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성의 자기표현의 중요성과 창조적 힘을 강조함으로써, 문학계와 넓게는 사회적 맥락에서 여성의 목소리의 중요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그녀가 이제껏 남긴 유산은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바라보는 데 영감을 주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주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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