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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24. 2023

좌절의 창작과 비워두기

내가 가진 나쁜 습관중 하나는 이른바 '좌절의 창작'이다.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지레 부정적인 전망을 사실인양 받아들이고 미리 좌절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실제로 닥칠지 모르는 좌절의 상황에 대한 충격을 줄일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좌절, 아직 실제로 내것이 아닌 좌절을 미리 대출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출받은 좌절은 상환할 필요도 없어서 원하면 원하는 족족 무조건 대출 승인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좌절의 세계의 우두머리는 무제한적 양적완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습관에 대항하는 방법은 '비워놓기'다.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실제로 그 시점이 닥칠 때까지 그 시점에 대한 전망을 공란으로 비워두는 것이다. 문장으로 쓰고보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비워두기. 그게 뭐길래, 얼마나 어렵길래. 


그런데 욕망 덩어리인 나로서는 공란을 공란인 채로 비워두는게 결코 쉽지가 않다. 예를들면 수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을 보다가 당장 답을 체크할 수 없는 문제가 나오면 그곳이 나에게는 구렁텅이가 되곤했다. 시험을 잘봐야만 하는 입장에서 뭔가의 답을 알 수 없다는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문장의 형태로 -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라고 판단을 내리고서 매달리는게 아니라 그저 완전한 심리적 접착제에 의해 그 공란 속으로 빨려들어간다고 하는게 사실에 가깝다. 


당장 알 수 없는것, 지금 당장 풀리지 않는 매듭은 매달릴수록 더 단단해져갈 때가 많다. 세상이, 또 나의 심리가 왜 그렇게 설계된건지 참 신기한 일이다. 알수없는 문제에 간절히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해법은 요원해져가곤했다. 물론 때로는 그런 난제에 본격적으로 매달릴 필요가 있을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보는게 실력의 향상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매달리느냐 비워놓느냐는 아주 간발의 차이를 두고 마주앉은 두개의 전혀다른 선택지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매달림이란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끈기와는 다른, 부정적 집착에 가까운 의미다. 


지금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잠깐 공란으로 비워놓는다고 해서 그 문제를 포기하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착에 빠지기 시작하면 잠깐의 공백이 마치 절대적이고 영원한 실패이자 패배처럼 비춰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매달림으로써 공란을 정답으로 채워넣을 수 있다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내 경험상으로는 훨씬더 빈번하게 발발했던, 정답을 도무지 채워넣을 수 없는 경우에 있다. 집착하고 매달림에도 불구하고 '정답'을 채워넣을 수 없을때, 그 공란에는 다른 뭔가라도 채워 넣어야만 한다는 법칙이 생겨나는 듯 하다. 그 다른 뭔가가 바로 창작된 좌절이다. 


정답을 채워넣지 못하는 집착은 공란을 좌절로 채운다. 그런데 좌절이면 좌절이지 왜 창작된 좌절인걸까. 그 이유는 그 좌절이 지닌 미래를 부정하는 속성에 있다. 좌절을 채워넣는 순간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문제해결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모든 좌절은 말하자면 창작된 것이다. 물론 어떤 좌절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좌절 역시도 정확히 말하면 창작된 것이라고 하는게 맞다고 본다. 어떤 좌절도 해결의 여지를 완전히 제거할 능력도,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참 애매모호한 말이지만, 마음을 비운채로 임하는 시험들에서 막히는 문제에 답을 잠시 비워두는건 자주 있는 일이다. 놀랍게도 답란을 정답으로도, 또 좌절로도 채우지 않은채로 완전히 비워둔 문제는 뜻하지 않은 시점에서 채워지곤한다. 다른 문제들을 모두 읽어낸 뒤에 다시 돌아왔을때 저절로 정답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적지않다. 분명히 처음 문제를 접했을때는 막막했는데 다시 돌아오기까지 다른 문제들을 풀아나가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 대신 문제를 풀어놓은 것 처럼 말이다. 


알고보면 처음에 문제를 잘못 읽은 경우도 있고, 처음엔 떠올리지 못한 접근법을 다른 문제들을 통해서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건 문제의 답란을 당장 뭔가로든 채워야 한다는 집착의 마음 속에는 이런 발견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답란을 정답으로든 좌절로든 채우는 마음은 자물쇠를 걸어닫은 문과 같다. 좌절은 문을 닫음으로써 미래를 특정한 방향으로 써나간다. 하지만 아직 시험 시간이 남아있다면 몇몇 문제들에 있어서는 답안을 비워둬도 문제될게 없다. 오히려 그렇게 비워두는게 용감한 일이고, 현명한 일이다. 


창작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가능성에 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창작이 아름답지는 않다. 좌절을 통한 창작은 오히려 가능성의 문을 걸어잠그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누가 들어올지 몰라도 문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꼭 시험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을 대하고, 기회를 맞이하고, 인생의 결정들을 내리는 상황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면 미리 답을 채워넣지 말고 공백으로 열어둔채 기다릴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창작이 아닌 실질적 좌절을 갑작스럽게 마주한다면 그만큼 더 쓰라릴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덜 쓰라리자고 가능성을 문전박대하는건 있어선 안될 일이다.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창작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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