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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16. 2023

저녁이 왔다, 저녁을 먹자

본드 냄새와 함께 학교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최종 리뷰를 앞두고 본드로 아크릴 패널을 붙여 미술관 모델을 만들면서 ㅁ지막 밤을 보냈다. 두세시간이 겨우 몇십분처럼 지나갔다. 모델을 만들다보면 종종 있는 일이다. 시간의 속도가 이렇게 빨라진다. 시간이 급류를 탄것처럼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게 바로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때가 흔치는 않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된다면 그럴때는 끝까지 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새벽 다섯시가 되고, 모델을 완성하고, 피로가 몰려왔고, 조는둥 자는둥 일곱시가 넘었다. 


잠에서 깨기위해 밖에 나가보니 학교앞 카페가 문을 열엉있었다. 늘 커피향이 좋았던 곳이었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들어가서 커피한잔과 함께 클럽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집에까지 가서 밥을 먹고 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올ㄴ만에 그런 여유로운 분위기도 즐기고 싶었다. 샌드위치에는 탄탄한 치킨 가슴살이 석쇠에 그을린채로 구워져서 들어있었다. 미묘하게 느껴지는 향들을 봤을때 이런저런 향신료를 적절하게 가미한 게 분명했다. 카페라떼도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었다. 


스튜디오 아파트 바로 옆 카페라서 거의 잠옷차림으로 모닝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외에도 다양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끌고 강아지를 대리고 온 사람.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나는 아직은 즐길 자격이 부족한 그런 류의 아침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살이에 급급한 입장이 될거라서 그럴 것이다. 배움은 끝나고 발휘가 시작되는 시점아닌가. 


하지만 발휘로도 배움은 계속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게 없을것이다. 여러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고 편안한 대화를 주고받으니 좋았다. 자꾸만 의식이 끊어진다. 그래서 여기까지 쓰면서 중간중간 틈입해 들어왔던 문자열을 복구해보면 아래와 같다.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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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리는 대로 눌러지는 그런 자판이다. 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ㅓ그러는 찰나에 이 파트가 추가되고 말았다. 또 의식을 놓친 것이다. 


오늘 내가 놓친건 무엇인가. 오늘 또 내가 잡은것은 무엇인가. 많은 것들이 수면아래서 오가는 바다에서 태연하게 그물질을 한것같은 하루다. 금요일이면 식당에 울려퍼지는 음악이 울려퍼진다. 밤을 먹을 시간이라는 뜻이다.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 클럽샌드위치와 도넛 두개가 유일했다. 저녁이 왔다. 저녁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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