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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08. 2023

나는 있다고 할 수 있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II

제목만 봐도 읽을맛이 안나는 글이지만 오늘 자기 객관화는 딱 여기까지다. 내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렇듯이 독자분들께 썩 좋은글이 못되겠다. 답은 나오지 않고 있으므로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나는 글이 될 예정이다. 어디까지나 문학적인 의미에서 세상의 끝에 서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공감을 살만한 문장을 쓸 처지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넋두리와 비슷한 질문으로 도배된 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흘러가는 기회들을 바라보며 마비된 손과 발로 바라보기만 하는 나는 누구인가. 가능성은 이미 실현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항상 머릿속에 그리던 2023년의 끝자락에서 아직 아무런 삶의 지침서도 확보하지 못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저녁을 먹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학교에 나와서 작업을 해야만 하는 나는 누구인가. 작업은 누가 시켜서 해야하는건가 내가 스스로 하는건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작업이 곧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들고 인쇄하고 발표하고 클릭한다. 공간을 그리고 만들고 인쇄하고 발표하고 클릭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예정도 없는 공간을 그리고 만들고 인쇄하고 발표하고 클릭하는 사람.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 사람은 왜 여기에서 그리고 만들고 인쇄하고 발표하고 클릭하는가. 그 사람은 왜 다시 학교에 발을 들여서 펄펄 날아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만들고 인쇄하고 발표하고 클릭하는가. 간단한 클릭조차 한번씩 실수하기 시작하는 연령의 이 인물은 어떤 이유로 학교에 돌아온건가. 누구이길래, 어떤 사연이 있어서 학교라는 공간에 또 다시 돌아온건가. 


나는 또 누구인가. 정면의 새하얀 벽에 붙은 친구들의 드로잉을 바라보면서, 또 새하얀 브런치 화면을 바라보면서, 자동으로 손끝에서 퍼져나오는 잉크같은 문장을 세상에 퍼뜨리면서, 이제는 익숙해졌나 싶지만 여전히 번거로운 안경의 감각을 느끼면서, 대각선 방향의 러시아 친구들의 표뜨르비찌 알레찌나 블라블라 하는 러시아어를 들으면서 프랑스어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느끼면서, 그러면서도 그쪽을 직접 바라보지는 않고 정면의 문장들이 불어가는 모습만을 간접적으로 바라보는 이 나는 누구인가. 


아홉시 이십사분. 저녁 아홉시 이십사분. 일주일전에 학교에서 밤을 지새우던 그 사람과 오늘다시 학교에 찾아와서 밤과 씨름할 각오를 다지는 이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또 어떻게 같은가. 과연 동일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사람의 출발지는 어디였고 도착지는 어디인가. 출발을 하긴 한건지, 도착을 하긴 할건지, 그런 안내같은걸 받은적은 있는지, 어딘가에 물어는 봤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적은 있는가. 카모마일 메들리 차를 우유섞은 뜨거운 물에 우려 먹는다. 맛있다. 맛이 있다. 있다고 할 수 있는게 그래도 한가지는 있다는 점에서 세상의 끝에도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있다고 할 수 있는게 그래도 하나는 있다는 점에서, 세상의 끝에도 희망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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