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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06. 2023

대작가가 아닌탓에 대단한 용기로 쓰지만 대단찮은 글

세계가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마도 오늘이 그런 날일 것이다. 모든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때. 김연수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이르러 가장 좋은 미래, 그러니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오늘은 글쓰기에 있어서도 다음 문장이 좀처럼 보이지 않고, 담장아래에 바짝 숨어있는 느낌이다. 내가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럴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평범한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나는 아무런 상상도 할 수 없다. 바꿔말하면 나에게는 미래가 없다. 왜냐하면 오든게 확률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졸업후의 진로부터 시작해서 모든게 안개속이다. 어디에서 살아갈지, 어떤 사람과 함께할지, 어떤일을 하게될지, 아무것도 짐작할 수가 없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에서 김연수 작가는 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말한다. 많은것들이 노력만큼이나, 혹은 노력보다 더 운에 좌우되는 세계 속에서 실패가 계속될수록 또 다시 실패할 확률은 오히려 줄어들고 성공할 확률이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낭설같지만 곱씹을수록 진실에 수렴하는 문장이라는 점이 묘하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을지라도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래서 한번더 시도할 수 있다면 세계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만큼 글쓰는게 더딘 날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게 대체로 더없이 가벼운 주제에다,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는게 전부인 글이다보니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망설일 거리도 특별히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정말로 암흑속에서 한걸음을 떼어 나가는 것 마냥 한문장 한문장이 온갖 가능성을 품은 미래에 내던지는 발걸음처럼 느껴진다. 늪인지, 살얼음판인지, 덤불인지, 트랙인지, 사막인지, 차도인지, 계단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직 글은 끝나지 않았고, 나는 상상을 계속해야 한다. 대단한 글이 아니더라도 대단한 작가가 아닌 내 입장에서는 대단한 각오를 하고 대단한 용기로 써나갈 수 밖에 없다. 


미래를 상상해보자. 나는 사천에서 차밭을 가꾸는 친구의 주택을 설계한다. 중간중간 쉴때에는 무슨 차인지 몰라도 카페인 없는 따뜻한 꽃잎차를 마신다. 그리고 말동무가 있다. 중국어를 하는지 영어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게 우리의 일상이다. 얼마간 큰 의미없는 소소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다시 각자의 작업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저녁이 오고, 식사를 하고, 밤을 맞고, 잠자리에 든다. 그런 하루하루가 큰 차이없이 반복되며 이어져간다. 겉으로는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내가 권태에 지치지 않는건 반복할수록 새로워지는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반복할수록 새로워진다. 


내가 건축을 발견할 수 있었던건 - 이 부분은 과거의 사실이지만 - 회사를 그만두고 진학한 건축 대학원 덕분이었다. 오로지 미국만이 나에게 열려있었고, 서부 LA의 오로지 한 학교만이 문을 열어줬다. 내가 한건 열린 문을 보고나서 망설임없이 들어가는게 전부였다. 일단 들어가고 나자 모든 것들이 내 뜻인지, 바람의 힘인지 알 수 없는 것들에 따라 흘러갔다. 졸업 쯤 나는 세상의 끝에 다다른듯 절박한 지점에 다다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상상했다. 김연수님의 책을 읽고서 말이다. 평범한 미래가 가장 좋은 미래라는 데에는 이제 나도 이견이 없다. 


나는 집을 짓고, 작은 미술관을 짓고, 작은 학교를 짓는다. 내가 지을 수 있는건 대학원에서 짓는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고 발전시킬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세상살이에 대한 뭉툭한 생각들 역시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있기 때문이다. 짓는다는건 단순히 벽을 세우고 천장을 덮는것만 의미하진 않는다. 짓는다는건 곧 크고 작은 세계를 짓는다는 뜻이다. 물리적으로 지어지는건 차가운 건물이지만 그렇게 지어진 공간 속에서는 따뜻한 관계들이 지어진다. 


어쩌면 그게 핵심이다. 나는 오늘에 대해서 이따금씩 생각한다. 세계의 막다른 골목에서 자판위의 손이 이끄는데로 미래를 상상하고 써내려가던 2023년 12월 5일을 떠올린다. 세계의 끝은 이후로도 한번씩 찾아오지만 나는 오늘처럼 계속해서 상상하고, 상상을 써내려가고, 써내려간 상상을 살아나간다. 그렇게 세상은 세상의 끝처럼 보이는 지점들을 지나 계속해서 나아간다. 전진할 때도 있고, 후진일할 때도 있지만, 전진도 후진도 아닐때가 훨씬 많다. 그보다 평범할 수 없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미래이자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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