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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04. 2023

내 눈이 볼 수 없는 내 눈에 대해서

글을 서서 쓰는건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누워서도, 업드려서도, 기대 앉아서도 써봤지만 서서는 써본 기억이 없다. 보통과는 다른 자세로 뭔가를 한다는건 꽤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된다. 진부하게는 누워서 떡먹기가 그렇고, 외발 자전거를 타면서 공 세개를 공중으로 던지며 저글링을 하는 서커스 연기자가 그렇다. 나아가 특이한 자세를 한 채로 꼭 뭔가를 하는게 아니라도 상관없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특이한 자세만으로 충분히 흥미로운 경우들로, 요가가 그렇다. 다운독 자세였던가, 얼핏 보기엔 업드려 뻗쳐 자세가 힘들어서 엉덩이를 쭉 밀어올린 자세와 별반 다를것 없지만 실제로는 어렵다는 그 자세 말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운독 자세에서 발 뒷꿈치가 땅에 완전히 붙는 모습에 탄성을 내뱉을 것이다. 


훨씬 시답잖은 사례도 많다. 어릴적 학교에서 쉬는시간에 뽑내듯 나열하던 그런 것들 말이다. 혓바닥을 괴상한 모양으로 일그러뜨리거나, 아래위 입술을 꼭 금붕어처럼 좁고 뾰족하게 만들어 뻐끔거리거나, 손가락을 흔들면 어디선지 몰라도 딱딱거리는 라이터 소리가 난다거나. 혀를 반 접은채로 유지할 수 있는지, 귀를 움직일 수 있는지, 손가락의 맨 끝 첫째마디만 꺽을 수 있는지, 등 뒤에서 양손을 깍지 낄 수 있는지 등등 아마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많은 신체부위들이 어릴적 장기자랑에 등장하지만 눈으로 하는건 퍼뜩 떠오르는게 많지 않다. 쌍꺼풀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징그럽게 눈꺼풀을 뒤집어 까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사실 그뿐이다. 그런데 바로 오늘 책 한권을 읽는 중 눈에 대한 특별한 점을 한가지 발견했다. 세상을 보는 눈은 눈 그 자신을 보지는 못한다는 점이다.(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중) 엄밀히 따지면 이건 신체부위 장기자랑에 낄수는 없다. 몸이 할 수 있는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를 끄는 정도로 따지면 적어도 나에게는 합격점 이상이었다. 


나는 내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본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 멀리있는건 물론이고 가까이 있는것도 어지간하면 모두 볼 수 있다. 인상을 빡 치푸리면 눈썹 가닥들도 대충은 시야에 들어온다. 코끝도 마찬가지다. 입술과 혀 역시 앞으로 쭉 내밀면 온전한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가 거기에 있다는 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다는건 '직접'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야구 중계처럼 어느 스크린에 나오는 이미지가 아니라, 혹은 거울에 반사된 모습이 아니라, 그 대상 자체를 직접 바라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 눈은 내 눈을 직접 바라볼 수 없다. 영영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매우 영화적인, 비극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면 한쪽 눈이 다른쪽 눈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일은 이론상 가능하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진다.) 하지만 오른쪽 눈이 오른쪽 눈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거울의 도움을 받거나, 카메라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타인의 눈동자에 비친 모습에 빚을 져야만 간접적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어떤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얘기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쓰는 과정 속에서도 이렇다할만한 의미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선 어릴적 자랑하고 놀았던 다른 많은 소소한 신체부위들에 대한 이야기와 크게 다를것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많은 시시껄렁한 이야기와는 달리 쉽게 웃어넘길 수 없는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성취 가능한 특이성이 아닌 성취 불가능한 특이성이 핵심이란 점에서 그럴 것이다. 나아가 그 불능이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점 역시 한몫 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건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이고, 존재가 아닌 공백에 대한 이야기다. 진지한 단어로 진지하게 말하는 문장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아 그렇구나 할 뿐 그 이상의 의미 같은건 없다. 내 눈은 내 눈을 볼 수 없을 것이고, 봐서도 안된다. 왼쪽 눈이 오른쪽 눈을 보는 사태는 더더욱 있어서는 안된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말이다. 이 글은 여러가지 세상밖의 소소한 것들을 지시하고 기술하고 있지만, 알고보면 텅 비어있다는 점에서 내 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서서 글을 썼더니 무릎이 뻐근해져온다. 역시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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