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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11. 2023

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 방법?


소설에서 발견한 말이다. 과연 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 법이 있을까. 출간된지도 몰랐던 무라카미 하루키의2017년작 소설을 읽었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이었다. 주인공은 30대 남자로 부인에게 이혼을 당한 뒤 방황하면서 자신의 그림세계를 아주 기묘한 사건들 속에서 확립해나가는 인물이다. 시간을 내편으로 만들어야한다는 각오는 주인공이 아주 초반부부터 다지기 시작해서 소설 중간중간마다 한번씩 상기되는 부분이다. 시간이 과연 내 편이 될 수 있을까.


주인공은 그러고보니 이름이 안나온다. 역시 글쓰기는 이렇게 의외의 발견을 가져온다. 반면 주인공으 직업적인 부분, 즉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대한 묘사는 놀랍도록 정교하게 제시된다. 그래봤자 학부에서 잠깐이었지만 그래도 그림을 공부했던 입장에서 읽는 그림의 과정에 대한 설명은 믿기지 않을정도다.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렇게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하루키는 직접 그림을 그려본건지도 모른다. 그림 작업을 하다보면 시간과의 줄다리기를 하게된다. 모든게 시간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감이 마르는 시간, 그 시간동안 다른 부분을 그리다가 적당한 시점에 다시 돌아와서 흐름을 이어가는 타이밍, 그림의 판세를 보는데 투여할 시간과 실제로 붓을 휘두르는데 투여할 시간 사이의 균형, 그런 것들이 다 시간을 두고 벌어지는 게임과도 같았다. 언젠가 중요했던 분기점에서 나는 내가 늘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걸 알았다. 그래서 가능한한 오래 바라보기로, 뭔가가 보일때까지는 그리지 않고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낵  붓을 잡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해서 누군가 쫓아오는것은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그러고 난 뒤에야 나는 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 그림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것을 그리기 시작했다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대로 그리지 못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리는 그림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모습이라기보다 누군가 바라본 세계를 그림으로 옮겨놓은 이미지를 따라그리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 마치 이 세계를 기술하는 언어의 그물망을 시인이 직조한것을 보통 사람들은 그저 대여해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는 시간이 꽤 필요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리기 이전에 그릴것을 관찰했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보지 않고서는 그리지도 못한다는걸 깨닫는데 오래 걸렸었던 것 같다. 


무작정 쫓기는 마음에 눈앞에 있는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던걸 어느 여름엔가 본격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라보는 동시에 바로 보기 시작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시간은 온전히 나의 편이었다. 나에게는 시간을 들여서 거쳐야할 과정이 있었고, 그래서 시간을 진득하게 흘려 보낼수록 나는 제대로된 길에 들어서게 되는 셈이었다.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라서 나도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먹을수가 없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얘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눈은 이미 뜨고있는데,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데 무슨 또 세상을 바라보고 바로본다는 소리란 말인가. 


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건 전적으로 나에게 달린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갈수록 쌓여가는 뭔가를 찾아냈는지, 그게 중요하지 안을까. 앞으로 이런 재미도 정보도 감동도 구체적인 이미지도 없는 글은 쓰느니 먹어버리는게 사람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야만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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