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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13. 2023

절박하지 않으리라

그러고보면 절박할수록 힘들어지는건 쉬어야할때 쉬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쉬지 않는 것이다. 누가 쉬지 말라고 하지 않는데도 제풀에 불안해서 발을 동동 쉼없이 전전긍긍이기 때문이다. 절박할수록 기어를 변속할 여유조차 잊어버리고, 그저 페달을 때려밟아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꽤나 무지한 투사가 되어버린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치전도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몇번 있다. 몇번이나 있는 이유는, 이런 바보같은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고난 뒤에도, 같은짓을 또 몇번이나 반복했기 때문이다. 


절박함이 없다, 성공꽤나 맛본 누군가가 성에 차지않는 타인을 향해 날리는 말일때가 많다. 하지만 내 생각엔 절박함이 없어야 오히려 성공하기 쉬운게 아닐까 한다. 절박함은 사람을 참 바보로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되던일도 안되고, 안되던 일은 더 안되게 만드는 마술사와 같은 존재다, 절박함이란. 절박함이란 대단한 일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건것처럼 메달리다가 손이 베이고, 손이 베이든 말든 무슨상관이냐며 다시한번 절박함으로 덤벼들다가 손이 또, 또 베이게 만드는 무언가이다. 


아크릴 보드를 레이저 커팅 기계로 자르다가, 왠일인지 기계의 출력이 약해서 말끔이 잘리지 않은 부분을 손으로 부러뜨리듯 잘라내면서 손을 몇번이나 베었는지 모르겠다. 모두 오늘 하룻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두손을 합해서 작게 베인 상처가 여덟군데, 그러니까 베이지 않은 손가락이 베인 손가락보다 더 적은 지경이다. 손가락 뿐인가, 말하기 애매한 부분들 - 즉 검지와 엄지 사이의 살이 접히는 부분이나, 검지손가락 등쪽의 마디가 시작되기 전 평평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각도로 무엇이 쳐들어왔길래 이렇게 다양하게 베일 수 있을까 의아할 뿐이다. 


그러다가 결정타가 된 것은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안쪽 살이 흡사 도기로 나무 한쪽을 비스듬히 30도로 쳐서, 마치 감자탕의 살점 발라내듯이 얇지만 또 나름대로 두툼하게 떨어져 나가기 직전의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었다. 역시나 아크릴 보드의 한 조각을 억지로 쳐내려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검붉은 피고 고이더니 이내 주르륵, 까지는 아니지만 주륵 정도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피를 보자마자, 앗 이게뭔가 하고 정신을 번뜩 차린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중에 뭔가 체했을적에 손가락을 따고 나는 피를 보는듯한 무의식적 각성같은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쩌다보니 나름대로 잔혹한 면이 있는 글이 되고 말았지만 내 손가락이 베이는 육체적 잔혹함보다 절박함이 가져오는 그 잔혹함이 훨씬 더 잔혹하다는게 내 의견이다. 절박함은 사람을 얼마나 잔혹하게 만들 수 있을까. 절박하면 내 몸뚱아리의 상처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데 타인의 상처는 어디 눈에나 들어오려나. 전쟁도 그렇고, 꼭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살아남기라는게 절박함을 안은 자들의 투쟁 아닌가. 절박할만한 상황이지만 좀 절박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절박해야만 할때 절박한 이들의 모습은 너무 뻔하지 않나. 너무 뻔하게 잔혹한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수도없이 학교에서 밤을 샌 한학기지만 마지막에 다다라서 이렇게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오히려 자랑스러운 마음이다. 절박함에 쫓겨서 줄행랑만 쳤지 절박함 그게 어떻게 생긴거길래 이렇게 도망을 쳐야되는건가 고개돌려 뒤를 본적은 없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잡혀먹는줄만 알았던 것이리라. -- 리라라는 케케묵은 종결어미를 쓰면 그 글은 그걸로 끝이리라 믿고 리라로부터 열심히 도망쳐 왔던 내 모습이 겹쳐지는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오늘은 도망치길 멈추고 나를 종말로 몰아대는 그자식의 낯짝을 바라보는 스스로가 대견해졌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전후 상관관계가 말도안되는 조악한 문장이라도 일단 쓰고보는 나의 베짱이 두둑하다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리라. 리라가 무섭다면 리라로 돌진하자. 거기에 답이있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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