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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14. 2023

눈처럼 보이는 것과
눈 너머를 볼줄 아는 눈

그러니까 즐겁지 않다는 것으로, 기꺼이 괴롭다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떳떳함을 확보하려는게 잘못이라는 말이다. 뭔가를 이루고 싶을때, 그게 쉽사리 이뤄지지 않을때, 다양한 노력의 길들이 있다. 그런데 보통은 노력은 고행의 길이라고 미리 가정하고, 힘든 길들을 택함으로써, 지금 당장 마쉬멜로같은 달콤함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서, 자신은 제대로된 길을 가고 있다고 안도하기 쉽다. 더군다나 대체로 그런 생각의 구도가 들어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더 굳어지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노력의 길이 꼭 괴로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뭔가를 성취하고 잘하는 길이 꼭 말도안되는 고통의 감내만으로만 가능한건 아니다. 


말로 하기엔 아주 미묘한 지점인것도 사실이다. 잘하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건데, 지나치게 열심히 하다보면 그저 열심히 하기위해서 열심히 하게되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보통의 공부도 공부지만 특히 그림을 그리거나 건축 디자인을 할때 이런 가치 전도를 겪을때가 많다. 남들도 다 하니까, 안하면 불안하니까 나도 뭐든 걸리는데로 열심히 하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전체적으로 봤을땐 단순하고 가벼워야할 주인공의 이목구비 명암이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짙은 색채를 띄게되고 만다. 물론 안될거야 없지만, 무조건 많이 그리고 열심히 두껍게 그려야만 좋은 그림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렇게 열심히를 위한 맹목적 열심 중간에도 한번씩 자각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점이다. 그 순간이 왔을때 전체를 둘러보고 방향을 재조정 하는게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맹목적 열심의 급류에 휩쓸려가기 십상이다. 실상 맹목적 열심 혹은 불안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고행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위한 열심 혹은 수행 사이에는 말도못할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은 불과 얼음만큼 다르다. 불과 얼음을 착각할 수도 있을까. 


어제 점심, 도롯가에 여기저기 거뭍한 자국과 함께 하얀 거품같은 것이 넓게 도로변에 깔려있었다. 요즘 LA날씨는 꽤 춥기 때문에 정말로 눈인가 순간 의심했다. 눈일 수는 없고, 거품의 일종처럼 보였지만 눈같은 모습이 흥미로워 비디오를 찍어 남겼을 정도다. 그런데 밤이되어 학교에서 오는길에 반대편 길에서 바라보니 눈처럼 보이던 거품이 깔렸던 곳에 창문이 다 깨지고 내부가 검게 타버린 소형 트럭 한대가 보였다. 그때야 그 거품의 정체를 깨달았다. 트럭에 불이 났고, 소방관들이 소화기로 불을 끈 뒤에 남은 흔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이렇게나 말도안되는 착각을 하곤한다. 


똑같은 노력이라고 해서 똑같이 의미있는 노력일 수는 없다. 더 괴로울수록 더 값비싼 노력인것도 아니다. 똑같이 길에 깔린 흰색이라고 똑같이 쌓인 눈은 아니다. 희다고 해서 모두 차갑진 않다. 오히려 트럭 한대를 전소시킨 불길의 흔적일 수도 있다. 어떤 노력이 하얀 눈처럼 쌓여 겨울 풍경을 만드는지, 혹은 나를 활활 태워버리는지 눈을 뜨고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당연한 시선을 잃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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