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재밌는 책이다. 책 제목처럼 '컬러'에 대한 짧은 역사와 성격 묘사 그 중간 어디쯤을 걷는 책인데, 저자가 참 박학다식하고 이거야말로 색깔 덕후구나 싶어서 웃음이 이는 책이다.
실은 본 책은 장바구니에 늘 담겨 있던 책 중에 하나였는데, 바쁜 걸 갈무리하고 책을 왕창 구매할 무렵 반드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주말을 앞두고 덜커덕 구매했다.
단단한 하드커버와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하나의 색들은 정말로 황홀하다. 아마도 편집자나 디자이너가 많이 고생했겠다 싶어서 감탄이 나온다. 색에 관련된 책중에서 묘사로 끝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본 책은 어떤 색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당 색상을 본문 내용과 같이 배치를 해 두어서 그걸 향유해보는 재미도 정말로 행복하다.
빛의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서 색상표를 보듯이 세세하게 나열한 각 색상의 이름과 얽힌 이야기들을 따라가 보자면 굉장한 지식인이 될 것만 같아서 모조리 외우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일화들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베이커 밀러 핑크색' 일화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이야기란, 1970년대 치솟는 미국 도시의 약물 유행을 덜어낼 방법으로 구역질 나게 밝은 핑크로 규정되는 '베이커 밀러 핑크'를 활용하는 것인데 해당 색상을 활용한 결과 너무 구역질 나게 밝은 핑크였기 때문에 범죄에 실제로 큰 효용을 보였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너무 효과가 좋은 나머지 미성년자들이 지나치게 쇠약해져 색깔에 노출을 제한시켜야만 했다.' 고 하니. 그 위력이 어마어마함을 알 수가 있다.
핑크 계열을 생각한다면 그건 여자 색상이고 파랑의 색상이 남자의 색상이라고 규정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룰 아닌 룰을 따르게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소녀는 핑크, 소년은 파랑이라는 이런 분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그 역사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롯되었다고 본 책에서는 밝히고 있다. <뉴욕 타임스> 1893년도 기사에서 핑크와 파랑에 대한 여자 아이와 남자아이에 대한 옷이 언급되는데, 이 인터뷰를 한 점원도 확실하게 이유를 대지는 못하지만, 그는 농담 섞인 가설을 내세웠다. '아마도 남자아이의 얼굴이 언제나 더 빨개서, 베이비 블루의 옷이라고 입히지 않으면 여자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핑크라는 단어도 17세기 영어사전에서 여린 빨간색을 묘사하는 단어로 처음 쓰였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다른 색상 계열에 비해 어린 단어가 아닐 수 없다.
하여튼 여러 색상에 대해서 붙여진 이름과 그 역사에 대해서 풍부히 공부해 볼 수 있고 그게 무겁지 않아 읽는 내내 웃음이 이는, 오래도록 두고 볼 책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이 되면 좋겠다.
앞으로 팔레트를 대할 때면 내가 붓끝에 입히는 색의 이야기들이 몽글하게 피어오르겠다. 진짜 다 외워버리고 싶은데 개학도 미뤄진 김에 주야장천 끼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