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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Feb 10. 2022

나는 왜 모유수유를 했나

타의로 시작된 완모의 길


모유수유나, 분유 수유냐 대해  생각이 없이 아이를 낳았다. 초유는 무조건 줘야 한다기에 얼떨결에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젖양을 늘리기 위해 유축도 시작했다. 그렇게 조리원 선생님들의 우쭈쭈와 아기에겐 모유가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모유 수유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모유와 분유를 50:50의 비율로 혼합수유를 했다. 모유 양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수를 하지 못하고 유축을 해야 했다. 젖만 물면 아이가 잠에 들어서였다.


딱 100일까지만 유축하고 단유 할 생각이었다. 유축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아이가 배고파하면 유축 모유를 데워 아이를 먹이고, 시간이 되면 또 유축을 해야 했다. 한밤에도 시간마다 깨서 유축을 했다.

모유를 먹이면 설거지거리가 없는데 유축 수유의 경우는 젖병 외에도 유축에 필요한 도구들까지 설거지거리가 늘었다. 그리고 유축을 하고 있을 때면 내가 정말 젖소가 된 기분이 들어 현타가 세게 왔다.


그래도 이왕 한 거 100일까지만 고생하자 싶었다.


하지만 육아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아이는 젖병을 거부했다. 나는 살다가 젖병 거부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됐다.


50일쯤 됐을 때부터 아이가 젖병을 물지 않았다. 분유가 맛이 없나 싶어 유축 모유를 줘봐도 물지 않았다. 젖꼭지가 문제인가 싶어 젖병의 젖꼭지도 단계별로 바꿔봤다.(젖병의 젖꼭지는 개월 수에 따라, 아이의 먹는 속도에 따라 다르게 사용한다)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했지만 아이는 젖병을 끝끝내 거부했다. 젖병만 보면 몸을 뒤로 뻗튕기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아이를 두고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너무나 완강해서 나는 더 이상 아이에게 젖병을 가져다 댈 수 없었다. 누구는 두세 끼 건너뛰면 먹게 된다던데 마음을 독하게 먹는 것을 참 못하는 나는 미리 포기해버렸다.


그렇게 완전 모유수유의 길로 들어왔다.


물론 모유수유를 하면 좋은 점도 있다.

1. 어쨌든 엄마의 우유니까 비교적 자연스러운(?) 먹거리이다.

2. 외출이 매우 간편하다. 과장하면, 기저귀만 있어도 외출할 수 있다.

3. 아이의 먹는 양에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애초에 얼마나 먹는지 알 수가 없으니 배고파하면 주고 본인이 조절하게 둔다. 의외로 많은 엄마들이 아기가 먹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이가 조금밖에 먹지 못하는 젖병을 보면 정말 쿨해지기가 쉽지 않다: 모유수유는 수유량을 알 수 없어 오히려 속이 편하다.

4. 네 번째는 장점이라가 보다, 모유수유를 하며 생전 처음 어떤 감정을 겪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서른n살에도 처음 느끼는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고 대차게 우유를 먹는 모습이라니. 조금은 벅차다. 나의 가슴이 이러라고 있는 거구나! 가슴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단점이 매우 크리티컬 하다. 육아가 온전히 엄마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엄마의 체력이 바닥인 신생아 때부터 몸무게가 꽤 나가는 6개월 이상이 돼도, 낮에도 밤에도 배가고 파 우는 아이를 엄마가 온전히 혼자 케어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백일 전까지 다섯 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 다섯 시간 자면 깜짝 놀라 벌떡 깼다가 빵빵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애기가 언제 일어나려나 기다려야 했다. 아빠는 말 그대로 보조해주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유부인은 단 세 시간뿐이 허락되지 않는다. 유축 모유도 먹지 않는 아이여서 우유 먹을 시간만 되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가 잠든 새벽, 동이 막 틀 때 새벽 수유를 마치고 집 근처 산을 두 시간씩 산책했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유일한 자유부인 타임이었다. 그 덕분에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


게다가 술, 커피를 못 먹는다!

내가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지만 육퇴를 하고 와인 한잔, 맥주 한잔 정도는 하고 싶은데 그 좋아하는 술을 1년 반이 넘게 못 마시고 있다. 매년 주류박람회를 찾고, 신혼여행도 이탈리아 와이너리 투어를 다녀왔을 정도로 남편과 맛있는 술을 찾아 마시는 게 낙이었는데 둘이서 나누던 인생의 소소한 재미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정말 마시고 싶으면 무알콜을 찾는다. 반면 그마저도 알코올이 소량 들어있는 ‘저알콜’인 경우가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

가끔 바람을 쐬러 카페에 가도 커피를 마시는데 제약이 있다. 아메리카노 한잔 까지는 괜찮다고 하지만 혹시나 아이가 잠들지 못할까 봐 나는 디카페인만 마셨다. 안타깝게도 작고 힙한 카페에는 디카페인이 잘 없어서 카페인이 없는 허브차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대부분 분유 수유를 한다. 책 <프랑스 아이처럼>에 따르면 분유 수유를 하는 것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이고, 특히 아이가 4개월이 되면 국가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다니도록 되어있어 꼭 엄마가 키워야 하는 것도 아님을 보여준다.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분리 수면을 하기 때문에 수면교육을 따로 하지 않아도 수면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서는 엄마의 삶만큼이나 여성이자 사회인, 그리고 한 명의 개인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개인의 존엄과 여성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놀랍게도 이런 일은 자의일 때도 있고 타의일 때도 있다. 문화라는 게 이렇게 개인과 사회의 뇌리에 뿌리 박혀있어서 이론적으로는 알겠지만 본능적으로 머뭇거릴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해보지도 않는 프랑스식 육아가 그립다.


어찌어찌 지금은 6개월이 지났고 처음과 다르게 모유수유가 굉장히 편해졌다. 이제 슬슬 단유를 해야 하는데 젖병 씻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귀찮아서 계속 미루게 된다. 그러나 모유수유가 편해지기까지 여정은 꽤나 길고 고됬다. 그래서 타인에게 섣불리 모유수유를 권하고 싶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자의로 모유수유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 고된 길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백일 정도만 힘들면 그 이후로는 정말 편하니 힘내시라고.. 분유 수유를 한다면 넘쳐나는 설거지와 열탕 소독의 굴레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배불리 먹은 채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품에 안겨 떡실신해있는 얼굴을 보는 것은 육아를 하는 부모만이 알 수 있는 행복이다. 평생 잊지 못할 귀여움이다. 이 귀여움을 위안삼아 오늘도 수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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