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잘 알기 위한 방법 다섯 가지
임신이나 출산 그 자체도 큰 일이지만 육아를 하면서 삶이 크게 바뀐다. 임신과 출산은 10개월이면 끝나지만 육아는 누군가의 인생의 기초가 되는 20년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니까. 나 역시 출산 후 인생의 중심이 나 자신에서 가족으로, 특히 아이로 옮겨갔다.
그러나 임신을 시도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꽤 오랫동안 좋은 부모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가 어떤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상상되지 않았고,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부모를 해도 될까.
나는 부모님과 사이가 매우 나쁜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 늘 정의내리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가장 싫었던 말은 ‘너무 사랑해서 그래’였다. 이는 사랑이라는 말로 모든 잘못을 무마시키려고 하는, 매우 간편한 ‘변명’이다. 사랑하는 것과 잘못된 행동은 분명 다르다. 전자는 감정의 영역이고 후자는 표현과 행동의 영역이다. 대부분은 이 두가지를 혼동하고, 전자를 바탕으로 후자를 대충 얼버무리려 한다.
그래서 많이 사랑 한다고 해도, 올바르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애초에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익힌 사람이 아닌 이상, 좋은 부모 됨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다면 자식에게 올바른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잘 표현하는 방법은 교육 받아야 한다.
오은영 박사님은 대부분의 사람이 부모에게 배운 것을 아이에게 대물림한다고 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나는 내가 부모님께 느껴온 아쉬운 부분을 아이에게 결코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에 대해, 그리고 육아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여러 육아서를 읽으며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의 역사를 온전히 곱씹고 나서야 나의 아픔을, 어린 나를 안아주며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시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내가 어떤 부분에서 감정적으로 거칠게 반응하는지 알고, 무의식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을 더 자세히 알아가기 위해 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책에서 길을 찾기도 했고, 간단한 심리 상담을 받았으며, 나에 대해 깊이 알아가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상세히 알아챌 수 있도록 일기를 쓰기도 했다.
그중 특별히 도움을 주었던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감정일기 쓰기
기분이 찜찜할 때, 화가 날 때, 우울할 때, 상대가 미울 때, 혹은 이게 무슨 기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때 나는 감정에 대한 일기를 써나갔다.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마치 쓰레기통에 단어들을 뱉어내 듯 써 내려갔다.
이건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제안한 모닝 일기에서 차용한 방법이다. 책에서 제안한 모닝 일기를 쓸 때 중요한 것은 두 번 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아무 말이나 쓰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쓰다 보면 처음 며칠간은 온갖 표면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이내 내 속마음을 드러내게 된다. 그렇게 삶에서 필요한 이정표를 다시 확인하듯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나는 감정일기를 쓸 때도 감정의 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며 정말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뱉고 나면 참 속이 시원한데, 몇 번 반복해서 쓰다 보면 뒤틀린 마음을 볼 수 있다. 메타인지다. 이렇게 내 감정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게 된다. ‘아 나는 어제 단순히 기분 나쁜 게 아녔구나’, ‘어떤 일은 내 감정선을 폭발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는구나’ 같은 것들을 조금 더 면밀히 알 수 있다.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이기에 다른 누구에도 보여줄 수없지만 가장 중요한 나를 위해 꼭 뱉고 꼭꼭 씹어 삼켜야 했던 시간이다. 여전히 베베꼬인 나를 발견하면 감정일기를 쓴다. 이 과정을 통해 내 마음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졌고, 타인에게 조금 더 관대해졌다.
2. 심리상담 <내 마음 보고서>
나는 부모님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존경하지는 않았다.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에 대해 심리 상담을 받고 싶었지만 막상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상담사 선생님을 앞에 두고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저는 부모님을 존경하지 않아요? 혹은 저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내 마음의 병이 너무 작게만 느껴져서, 그리고 상담실이라는 공간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이 커서인지 나는 실제로 상담을 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내 마음 보고서’를 알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몇 개의 질문에 답변을 하면 2-3주 후에 나의 성향을 정리한 한 권의 책이 배송된다. 책에는 나에 대한 장단점이 객관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큰 기대 없이, 간략하게 답변했음에도 꽤 적확하게 나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사실 그 책에서 내가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직접적으로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그 이해를 통해 내 질문에 스스로 내린 답은 이거다. 나는 타인에게는 매우 관대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아주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부모님한테도 비슷하게 높은 기준을 제시한다는 것. 나는 기대했고 실망했으며 그래서 더욱 부모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심리상담을 받고 싶지만 막상 상담 센터나 정신과에 방문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추천하고 싶다. 물론 좋은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을 수도.
3. 책 <삶으로 다시 태어나기> (에클하르트 톨레 저)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은 밑줄만 160개, 필사하면서 세 번을 읽었다. 내가 이렇게 절실하게 이 책을 읽은 데는, ‘에고’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에고에 둘러싸인 자는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본질을 보지 못하고 외형적인 사실이 전부인양 바라본다.
책에 따르면 ‘에고는 잘못된 것이 아니며 단지 무의식일 뿐이다’라고 했다. 깨어있지 못한 에고에 휩싸이면 자신의 믿음과 생각에 더 깊이 매몰되기 쉽다. 이러한 에고에서 벗어나려면 현재에 존재해야 한다. 내가 적극적으로 현재에 존재하고 깨어있으려 노력해야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감정이나 생각으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각, 호흡,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재에 존재하며 깨어있는 방법이다.
나는 에고에 휩싸인 삶을 꽤 오랫동안 살고 있다. 특히 부모님과의 대치 상황에서 나는 에고에 똘똘 쌓여 있었고, 돌이켜보면 부모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을 깨닫게 되자 부모님을 부모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이제는 그들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들이 에고에 갇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4. 성인 애착 유형 테스트
어느 티비프로그램에사 오은영 박사님이 성인애착 유형 테스트를 언급한 바 있다. 매번 외면하다가 무심코 테스트를 했는데 내가 힘든 마음 상태가 될 때마다 도움이 됐다. 블로그나 커뮤니티 게시글에서 ‘불안정 애착 유형의 사람과 연애하기’ 같은 글을 보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하고자 노력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특히 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의 사례를 보며 늘 스스로 찜찜하게 여겼던 부분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안개처럼 흐릿한 것들은 문장으로 이름지어질때 분명해진다. 명명한 문장을 만나니 마음속 구름이 걷히면서 해결방법이 조금 보였다. 내 상태를 알고 나니 아이에게는 더욱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은 덤이다.
5. TV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어린 나’를 자주 만났다. 나와 비슷한 행동을 했던 아이들을 보며 나의 상태를 이제야 이해하기도 했고, 그때의 내 감정을 들춰보고 마주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보며 어린 나는 그때 왜 기분이 나빴는지, 그때의 일이 왜 여태껏 찜찜하게 남아있는지 등 뒤돌아보고 감정 일기를 쓰고 난 후에서야 그 시간들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부모님의 상황이나 상태를 대입해보기도 하고 상황을 바꿔 생각해보기도 했다. 만약 내 아이가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지, 감정적으로 어떻게 포용해야 할지 생각했다.
프로그램에 나온 부모들을 보면서도 느꼈다. 다들 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우리 부모님도 몰라서 실수를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해 알수록 나는 평온을 찾았다.
아마도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내가 자라오며 겪은 감정과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거다. 이를 통해 한 발짝 떨어져서 감정을 바라보고, 판단이나 평가하지 않고, 숨 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드는 힘이 생겼다. 앞서 소개한 에클하르트의 책에서는 이를 ‘깨어있다’라고 표현한다.
여러 방법으로 나와 부모님을 이해하고 깨어있으려고 노력한 결과 알게된 사실은, 부모님도 잘하려고 했으나 때때로 실수를 했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어쩌면 부모 됨이 무엇인지 고민하기에 부모님의 현생이 너무 바빴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란 ‘언제든 돌아가 푹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강인한 척, 씩씩한 적 핬지만 사실은 마음 깊이 의지할 누군가를 찾았던 나는 ‘언제든 마음 편히 쉬며 힘들 땐 의지할 수 있는 따듯한 공간’을 필요로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좋은 부모라는 정의는 달라질 수 있을 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좋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공부할수록 열린 마음으로 나와 아이를 안을 수 있게 된 거다. 부모 됨을 공부하는 것은 어쩌면 더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한 태도를 공부하고 이를 몸에 습득하게 만드는 수련의 과정 같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쉽지 않겠지만, 아이가 훗날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참 따뜻했고 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