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눈물이 터진 밤

열두 번째 페이지, 그리고 피로 물든 새벽

by 붕어예요

그와의 마음이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불안이라기보다는 ‘고민’에 가까웠다.

그도 나도 서로에게 가벼운 사이가 아니었기에
마냥 설레는 연애만을 꿈꿀 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그렇기에 언젠가는

그의 부모님을 마주해야 했다.

'숨길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이혼을 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큰 결격처럼

느껴질 수 있기에.

내가 말없이 고민을 안고 있는 걸

그가 알아챈 걸까.


어느 날,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먼저 말씀드릴게.
그러니까 자기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알았지?"


그는 본가에 다녀올 일이 있다며
이번 기회에 내 존재에 대해 말씀드리고,
내 이혼 이야기도 함께 꺼내

설득하겠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집에는 잘 도착했어요?"
"응, 잘 도착했지. 그리고 부모님께

자기 얘기 다 말씀드렸어."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나는 숨을 삼키며 물었다.


"… 뭐라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조금 걱정하셨어.
아버지는 자기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시더라고."


다행히 반대는 없었다.
나라는 사람을 직접 보고

판단하시겠다는 마음.
그 말에 안도의 숨이 나왔다.
일단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나는

‘조만간 인사를 드려야지’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즈음, 감기 몸살이 심하게 찾아왔다.

약을 먹어도 좀처럼 낫지 않았고
그날따라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다.

그는 야근이 있다고 했고,
나도 약을 먹고 일찍 잠들 생각이었다.


“나 약 먹고 조금 일찍 잘게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해요.

내일 연락할게요.”


그렇게 짧은 전화를 끝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해. 자고 있었지?

혹시 지금 잠깐 나올 수 있어?
친구한테 부탁해서 약을

자기 집 대문 앞에 놓아뒀는데,
그 약은 자기가 직접 들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나는 겉옷만 걸친 채 조심스레

대문 앞으로 나갔다.
그 순간, 어둠 속 골목에 밝은 빛이 번졌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깜빡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95b835cb-4daa-4ddb-8718-33d91908ce98.png

그였다.


야근한다고 했던 그는,

퇴근하자마자 약을 사 들고
무려 세 시간 반을 달려 내게 온 것이다.


주말도 아닌 평일 밤.
다음 날도 출근해야 할 그가
그저 내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그렇게 달려왔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그 순간, 참았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고마움과 감동, 미안함이 뒤섞여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딱 10분 남짓 대화를 나눴다.
그는 다시 조용히 차를 돌려 떠났다.


그리고, 바로 그날 새벽.

잠결에 느껴진 심상치 않은 복통에 눈을 떴다.
식은땀이 흐르고,

아랫배는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73df1153-446b-417d-b99e-2e7ccaab0ccc.png

속옷을 내려본 순간,
붉은 피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생리가 아니었다.
하혈이었다.

눈앞이 핑 돌고,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
겁이 났다.

안방에서 자고 있던 엄마를 깨워
급히 응급실로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13. 시작, 또 다른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