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페이지, 내가 모르는 사이, 넌 어땠을까?
비틀거리며 응급실에 들어섰다.
피는 멈출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더 많이 쏟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세요?”
“모르겠어요… 하혈이 너무 심하고,
배가 너무 아파요 선생님…”
응급으로 몇 가지 검사가 진행됐다.
차가운 응급실 침대 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누워 있었다.
혈관을 타고 진통제가 흘러들었고,
조금씩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왈칵.
무언가 뜨겁고 묵직한 것이 아래로 쏟아져 나왔다.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선생님! 선생님…!”
내 목소리에 간호사 선생님이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세요?”
“여기요… 뭔가 빨간 덩어리가 나왔어요. 이게 뭐예요…?”
그건 꼭,
갓 태어난 털 없는 생쥐처럼 생긴 작은 덩어리였다.
간호사 선생님은 놀란 눈으로
그것을 하얀 천에 조심스럽게 감쌌다.
“이게… 뭐예요?”
내가 묻자 선생님은 조용히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릴게요.”
무엇이었을까?
그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난 바로 입원을 하였고
다음날 오전이 되어서야 산부인과 진료를 보게 되었다.
“유감스럽지만… 유산이네요. 8주 정도 된 것 같아요.
그 시기라면 심장이 생겼어야 하는데, 확인되지 않았어요.
안에 있던 아기는 자연적으로 배출이 되었고,
자궁 안에 남은 게 있는지 초음파를 한번 볼게요.”
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이지? 유산이라고?
그럼 내가 임신을 했었다는 건가? 그럴 수가 있나?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몇 분이 지났을까 초음파가 끝났고
다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안에 찌꺼기 같은 게 남아 있어서
긁어내는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오늘 오후에 수술 일정 잡읍시다.
병실로 올라가 계시면 간호사가
수술 절차 안내해 드릴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사무적인 대화 그도 그럴 것이 나조차도 슬프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부모님께서도 내가 유산한 사실을
바로 알게 되셨고 어떻게 임신한 줄도 몰랐냐고
되물으셨다. 난 정말 몰랐다.
내가 피임약도 먹고 있었고 피임도구도 썼고
이중으로 피임을 했기에 전혀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아무 증상도 없었고 생리를 안 하는 건
내가 원래 불규칙하기도 했지만
피임약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생각을 곱씹어 봤다. 증상이 뭐가 있었나?
그때 갑자기 머리를 딱 스쳐가는 증상 바로 감기몸살이었다.
그런데 이 감기 몸살이 임신을 알리는 임신 증상이었는지
유산이 되려고 몸이 안 좋아 감기몸살이 온 것 인지는 모르겠다.
둘 중 어느 쪽이던 감기약을 처방받아먹어도
낫지 않았던 게 임신성 몸살이라 그랬던 모양이다.
병원 옥상에 올라가 그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나 병원에 입원했어요. 어제 새벽에 급하게 응급실 왔어"
그는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왜? 어디가 많이 안 좋은 거야? 지금은? 지금은 좀 괜찮아?"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빠.. 나 유산이래요.. 나도 믿기지 않는데 오빠도 그렇죠?
내가 임신을 했었데요.. 이게 말이 돼요??"
그도 많이 놀랐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오빠가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혼자 감당하게 해서 미안해..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셔?"
"이따가 수술하기로 했어요.
안에 조금 남아 있는 게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나 봐요... 미안해요.."
"자기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해야지.."
그렇게 대화를 좀 더 주고받고 전화를 마쳤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가니 여전히 부모님이
병실에 앉아 계셨다.
아빠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 당장 이번 주에 올라오라고 해!"
그래 화가 나시겠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먼저 카톡이 왔다.
"자기야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 가볍게 만나는 사이 아니잖아
내가 끝까지 책임질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은 수술 잘 받는 것 만 생각하자 알았지?
그리고 이번 주에 자기 부모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갈게"
너무 든든했다.
아, 이 사람은 내 편이구나 싶을 정도로 고맙고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