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페이지, 신은 공평했네요.
그렇게 우리 집에 인사를 무사히 마친 뒤,
곧 날짜를 잡아 그의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괜히 죄지은 것도 아닌데,
'이혼'이라는 꼬리표가 마치 큰 죄처럼 느껴져서
정말 많이 긴장되고 떨렸다.
혹시 이혼에 대해 물어보시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가는 차 안에서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도착하자,
잔뜩 얼어붙은 내 손을 그가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드리자.’
용기가 났다. 물론 부모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OO오빠 여자친구 OOO입니다.”
어렵지만 씩씩하게 인사드렸다.
“오느라 힘들었죠? OO 이한테 얘긴 많이 들었어요.”
마침 아버님 생신이라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는 2남 1녀 중 막내였다.
부모님만 계셔도 떨릴 텐데
형님, 누나에다 그 가족들까지.
그날 나는 혼자, 온전히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버님께서 조심스레 입을 여셨다.
“그래, 아들에게 들었어요. 이혼을 했다고…”
“네, 3개월 정도 살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흉도 아니긴 한데…
솔직히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우리도 아가씨를 직접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네, 아버님. 충분히 이해해요.
걱정되시는 게 당연하죠.”
어떤 인상을 남겼을지 걱정 반, 기대 반.
아니 어쩌면,
내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를까 봐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그때, 그의 누나가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힘들었겠어요… OO이가 여자친구라고
정식으로 인사시킨 사람은 처음이라,
솔직히 놀라긴 했죠. 그런데 직접 뵈니까…
괜한 걱정이었구나 싶네요~”
그 말에 순간 울컥했다. 또, 감사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앞으로 자주 봐요. 집에도 자주 오고.”
“네, 아버님.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분위기는 무척 따뜻했지만,
어머님의 얼굴엔 아직 그늘이 남아 있었다.
싫어하신다기보다는, 걱정이 많으신 듯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머님이 안심하실 수 있도록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버님께서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신 것 같아,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한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게,
이렇게 설레는 일이었나?
물론, 세상을 살며 모든 이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의 가족만큼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받아주었으면 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를 낳고 길러주신 분들께도 마음을 다하고 싶었다.
그 뒤로도 나는 그의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자주 드리며 조금씩 친밀감을 쌓아갔다.
아버님은 점점 더 나를 좋아해 주셨고,
이내 어머님도 걱정을 내려놓고
나를 온전히 받아주셨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긴장되고 떨렸던 그날을 지나,
어느새 한 가족의 일원으로 자연스레
자리 잡아가고 있는 나를 보면 말이다.
전에는, 전남편이 본인 가족과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내가 아무리 섞이려고 해도 쉽게 스며들 수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화목한 가족,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을 알고 자란 사람.
그 사랑을 이제 나에게 전해주고 있는 그 사람.
신은 공평하다는 말,
어쩌면 이런 순간에 쓰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