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
어찌어찌해서 설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도 아니었다.
하루 200통이 넘는 전화,
익숙하지 않은 보험 상품 공부,
타임별로 조절해야 하는 콜 시간,
고객 맞춤 관리, 실적 압박…
하나같이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나는 살면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고, 때론 거절을 유도해야 하는 일을
쉽게 해낼 수 있었을 리 없다.
무엇보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몸이 아픈 사람이다.
진짜로, 몸이 먼저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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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꾸 삼천포로 빠진다.
그래서 이 글도 어딘가 흐트러져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다듬어지지 않은 내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말해보려 한다.
어렸을 적 이야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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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살에 췌장암 수술을 받았다.
말만 들어도 버거운 병인데, 그게 내 얘기였다.
단순히 배가 아파 병원에 갔을 뿐이다.
식은땀이 날 정도였지만, 설마 큰 병일까 싶었고
결국 초음파에서 심장 옆에 무언가가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다.
정밀검사 결과,
그건 췌장에 붙은 성인 남성 주먹만 한 혹이었다.
조직검사 결과는, ‘암’.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이 혹이 생긴 지 아마 10년은 됐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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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9살 무렵부터 자주 소화가 안 됐다.
동네 병원에서는 위염, 장염이라는 진단만 반복되었다.
하지만 위염도, 장염도 아니었다.
내 안에서 자라고 있던 암덩어리가 원인이었다.
어린아이가 그런 병에 걸릴 거라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겠지.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내 병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혹이 터지지 않고 있던 것만으로도
“신이 도운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었다.
12시간이 넘는 대수술 끝에
췌장, 십이지장, 비장, 소장, 쓸개…
내 몸의 일부를 많이 잃었다.
혹은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만약 그게 터졌다면,
그저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10년을 참고 있었던 내 몸…
정말 신이 도운 걸까.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같은 일을 해도 더 쉽게 피로하고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아프다.
이건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췌장암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텔레마케터로 살아간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더 어렸을 때 살아온 이야기부터 해보고 싶어졌다.
이런 시간을 살아냈다는 걸 온전히 기록하고,
그런 아이도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사실은,
괜히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게
독자들에게 오해를 사진 않을까 망설였다.
그래도 그냥, 말하고 싶어졌다.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처음이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 모든 것도 ‘나’니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