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페이지, 아홉 살 이전의 기억
어릴 적 이야기를 쓰려하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내 기억이 또렷하게 시작되는 나이는 아홉 살쯤.
그 이전 기억도 있지만, 몇 살 때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참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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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은 거의 매일 부부싸움을 하셨다.
엄마는 스무 살, 아빠는 스물셋에 나를 낳았다.
그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으니,
안 맞는 게 많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아빠는 화가 나면 밥상을 엎었고,
엄마를 때리는 일도 잦았다.
부모님이 싸운 날이면 밤중에,
엄마는 자고 있던 나와 남동생을 깨웠다.
우리 손을 꼭 잡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조용히 아빠를 피해 집을 빠져나와 도망가곤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따라나선 길.
그때 엄마의 서글프고 처연한 얼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더 서글픈 건 그렇게 나와도
우리 엄마에겐
그리고 우리 남매에겐 갈 곳이 없었다..
그 무렵 나이였을 것이다.
어느 날, 밥 대신 빵이 먹고 싶다며 떼를 썼고
엄마는 마지못해 쌈짓돈을 꺼내주셨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집 근처 작은 슈퍼에 다녀오기로 했다.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던 길.
슈퍼 옆 좁은 골목에
작은 만화책방이 있었는데,
그 앞에서 한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 “얘야, 잠깐 이리 와볼래?”
나는 본능적으로 무서웠다.
> “싫어요...”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저씨는 화를 내며 다그쳤다.
> “어른이 부르는데 안 와?!”
나는 얼어붙은 채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사람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넌 키도 크고, 피부도 하얗고… 예쁘구나.”
그 손길은 머리에서 어깨로,
팔과 손으로,
그리고… 내 엉덩이로 내려왔다.
이내 바지 속으로 손이 들어왔을 때,
나는 너무 놀라 움직일 수 없었다.
> “아빠가 알면 혼나요...”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 “그럼 말 안 하면 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
내 울음소리에
만화책방 주인아저씨가 나왔다.
그제야 그 남자는 허겁지겁 도망쳤다.
> “얘야, 왜 우니? 무슨 일 있었니?”
책방 주인아저씨의 물음에
나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했을 땐
마침 아빠가 집에 있었다.
> “어떤 아저씨가… 내... 소중이를 만졌어...”
나는 그렇게 말하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다리는 풀리고, 온몸이 떨렸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은
마치 꿈처럼 흐릿하면서도
어딘가에 깊게 박혀 있다.
내가 말문을 열 수 있었던 건,
정말 용기였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또 한 번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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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그날 이후부터 ‘어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의 나를 만든 조각이 되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내 어린 시절 이야기의
첫 페이지다.
고백이라고 해야 할까?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