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애증의 관계

두 번째 페이지, 너무 헷갈려요.

by 붕어예요

엉엉 울며 하는 내 얘기를 듣더니 아빠는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우리 집 근처엔 조금 높게 깔린 철길이 있었는데

그 철길을 아빠는 소리를 지르고 욕을 뱉으며 맨발로 달렸다.

누구냐, 도대체 어느 놈이냐며.

아빠는 그 철길 위를 헐떡이며 뛰고 또 뛰었다.

나를 상처 입힌 누군가를 찾아내겠다고.

결국, 잡지 못했다.
그날 밤 아빠는 술을 많이 마셨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 가족만 아는 일로 조용히 덮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한다.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
어린 딸이 더 다칠까 봐,
그게 걱정이었을까?

나는 아빠와 친하지 않다.
그렇다고 특별히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아빠를 좀… 싫어한다.
엄마를 때리던 장면들을 자주 봐야 했던 나는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무서웠다.

어릴 적 장난감 가게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남동생은 장난감 자동차를 골랐고
나는 바비인형을 들고 말했다.
"아빠, 나는 이거 갖고 싶어."

그때 아빠는 말했다.
"다 큰 년이 무슨 인형이야!"
내 나이 여섯, 일곱 살이었는데...
결국 인형은 사주지 않았고,
남동생만 장난감 자동차를 사주었다.

돈이 모자랐던 걸까?
그래서 나에게 화를 낸 걸까?

“오늘은 동생 것만 사자. 나중에 더 예쁜 인형으로 아빠가 사줄게.”


그저 이렇게 말해줬다면 이해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아빠가 한번 ‘안돼’라고 하면

정말 안 되는 줄 알았던

아빠말이 곧 법이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아빠는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잘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그 어떤 말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아빠가,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말은 본인이 옳고

타인의 말은 다 틀렸다고 믿는 사람.

나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고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좋아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빠는 나를 통제했다.


“키 큰 애가 무슨 피아노야. 농구나 해.”

“가수는 무슨 가수야, 기술이나 배워라.”


그러나 나는 어릴 때 공에 맞은 기억 때문에

구기 종목이 무서웠다.

그런데 아빠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나 배구를 하라고 강요했다.


나는 운동보다 노래가 좋았고

진심으로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때는

혼자 기차를 타고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오디션에 다 합격하고

마지막 대표 면담만 남겨둔 상태였지만

아빠는 끝내 반대했다.


미성년자였던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난 칭찬받고 싶어서 부단히 도 노력했다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고

상도 많이 받았고

전교 1등도 해봤지만

단 한 번도,

아빠에게 칭찬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잘해도,

아무리 애써도

나는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빠는 내가 아프거나

남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는

가장 먼저 나서는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들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아빠와 밥 먹는 것조차 싫었다.

식탁에 같이 앉으면 늘 긴장됐고

그 끝은 항상 체했었다.

퇴근한 아빠에게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내게 5만 원을 건넸다.

"엄마랑 동생한테 말하지 마. 아빠가 너만 주는 거야."

나는 그게 또 너무 헷갈렸다.

아빠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느 날

아빠가 쓰러지셨다.

뇌경색이었다.

긴급 수술 끝에 살아나셨고

지금은 오른쪽 다리를 절고,

팔이 조금 불편하신 상태지만

잘 지내고 계신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계시던 날,

집에 혼자 돌아와

옷걸이에 걸린 아빠 옷을 봤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이거, 우리 아빠 옷인데…"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아마도, 애증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여전히 애증의 관계.


실질적인 가장은 늘 엄마였다.

아빠는 한방을 노리는 사람이어서

이 것 저 것 일들은 많이 벌였지만
언제나 실속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도박은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남매를 키우느라
지금까지도 단 하루 쉬지 않고 일한다.
쉬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아직 그러지 못한다.
막내 남동생이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니까.

그렇다.
나는 늦둥이 남동생이 태어남으로 인해 열여덟 살에
2남 1녀 중 장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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