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이젠 마침표를 찍어야지

열입곱번째 페이지, 저는 마음이 아픈 건가요?

by 붕어예요

고통을 참다못해 관리사무소에 가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관리사무소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다.

그럼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사를 가자.
피해자인 우리가,
오히려 피해서 이사를 가야 하는 이 아이러니.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할머니가 언제 또 망치를 들고 올라오실까
조마조마해하며 지내던 어느 날


내 몸이 이상했다.

손이 떨리고 집에서도 하루 종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불면증까지 심해지고
대인기피증 까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런 날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오빠가 날 정신의학과 병원에 데려갔다.

하얗고 넓은 책상, 검은색 컴퓨터
향긋한 디퓨져향기..
컴퓨터 앞에는 안경 쓴 조금은 젊은
의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환자분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의사 선생님 물음에 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왜 이렇게 말이 안 나올까, 순간 나도 의아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솔직하게 내 감정을

털어놓는 게 익숙지 않다.
항상 참았고, 또 참는 게 당연했던 삶이었다.

그걸 의사 선생님은 단번에 알아보신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환자분, 괜찮아요. 지금 굉장히 지쳐 계신 거예요.
텔레마케터 일을 오래 하셨다면서요?
그런 분들 중엔 감정을 꾹꾹 눌러 담다가
어느 순간 툭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늘 거절당하고 혼나고, 또 웃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마음을 닫는 게 몸에 밴 거예요.
당연한 거예요. 하지만 저는 환자분 이야기,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지금 당장
말하기 어려우면 조금 이따 얘기해도 괜찮아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곤 상담실을 나와 냉수 한 컵을 마시곤
화장실로 달려가 남은 눈물을 마저 쏟아 냈다.

그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남자친구의 눈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보게 되면, 더 무너질 것 같았다.

가까스로 눈물 흘리는 걸로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거기서 그 눈빛까지 마주하게 된다면?
정말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화장실 변기에 앉아 얼마나 울었을까?

조금씩 진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스스로 다짐했다.

'그래, 날 위해서 그리고 날 저렇게 걱정해 주는 그를 위해서라도 한번 해보자.
괜찮아 그래 괜찮을 거야 여기까지 온 것도
엄청 큰 용기잖아?
그 용기에 발걸음 한 발짝만 더 하는 거야.'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저 견디면 되는 줄 알았다.
그냥 지나가겠지,
나만 참고 버티면 되겠지.
근데 결국엔 아니었다.
이제는 도망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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