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이야기, 분명 꿈이었단 말이에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나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선생님..
처음엔 그냥 층간소음 문제라고만 생각했어요.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를 드렸는데,
저희가 출근해서 아무도 없는 시간에도
쿵쿵거리고 시끄럽다며 아래층 할머니가
찾아오셔서 망치로 현관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고 계시더라고요.."
나는 순간을 떠올리며 잠시 숨을 골랐다.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믿지 않으시고,
그 상황 자체가 너무 공포스럽더라고요..
그러면서 스트레스가 쌓였는지
전 남편이 칼을 들고 찾아와 저를 죽이는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매일 같이요.
'할머니가 또 망치를 들고 오시면 어쩌지?'
'또 잠들면 악몽을 꾸겠지?' 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드니까 잠들기가 어렵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손이 떨리고.. 제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딱히 할 것도 없는데 계속 왔다 갔다 하게 되고..
사람 상대하는 일을 오랫동안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무섭고 힘들어졌어요."
나의 현 상황을 사실대로 말을 했다.
다 얘기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후련했다.
내 얘기를 끝까지 다 들으시던 선생님께서는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라며
공감과 위로를 해주셨다.
그리고 증상 완화를 위한 방법과 함께
약을 처방해 주셨다.
내 병명은 불안장애, 공황장애, 불면증 이였다.
병원에 다녀온 첫날부터 약을 복용했다.
약 기운에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깨어나도 계속 잠에 취해 있었다.
정신은 몽롱했고, 기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몸은 자꾸만 가라앉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웃음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더 이상 손이 떨리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끔
멍한 상태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을 만큼 말이다.
그렇게 무감각 속을 떠돌던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
갑자기 차도로 뛰어든다거나,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본다거나..
그런데 그 모든 순간들을
난 분명히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너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마약에 취하면 이런 기분일까?’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할 정도다.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께 지금 내 상태를 말씀드렸다.
그러자 약을 바꿔보자고 하셨다.
새로운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전과 비슷했지만,
다행히 이번엔 ‘사람이 살 수 있는 정도’였다.
약 기운에 잠시 용기를 내보기도 했다.
‘이제 괜찮아질 거야’
스스로를 달래 봤지만—
선뜻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더 몰아붙였다.
너무 무기력한 내 모습이,
한심하고 바보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불안장애? 공황장애? 그게 뭐라고.
그까짓 게 뭐라고 내가 이러고 있는 거야… 바보같이.’
스스로를 다그칠수록 마음은 더 텅 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약을 먹었다.
다행히 남자친구가 빨리 발견해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나는 그날,
내가 약을 먹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