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페이지, 인생 2회 차란 이런 걸까요?
이런 일이 일어나다 보니
처방받은 약을 도저히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 나아지긴커녕, 전보다 더 나빠진 삶.
그래서 결심했다.
약을 먹지 않기로.
이사를 갔다.
그 뒤로 내 상태는 점점 호전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임신을 했다.
하루하루 기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공존했다.
2018년도의 일이었다.
임신 8주 차 아이의 심장이 갑자기 뛰지 않았다.
두 번째 유산
그렇게 또다시 내 아기를 잃었다.
또다시 잃었다.
지켜주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단지 염색체 문제일 뿐이라고.
하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첫 번째는 임신 사실을 몰랐다 쳤어도
두 번째만큼은 지키리라 다짐했었는데..
또 소파수술을 했다.
2019년 봄,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세 번째 임신도 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또 잃으면 어쩌나 계속 걱정이 되었다.
첫 심장소리를 듣고 펑펑 울었다.
그리고 첫 번째, 두 번째 아이들 모두 잃었던
8주 차 심장소리를 듣고 또 펑펑 울었다.
난 울보가 되었다.
도토리처럼 옹골차고 단단하게
자라라는 의미에서
태명을 '토리'로 지었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온몸이 황금으로 빛나는,
집채만 한 소 한 마리를 이끌고
우리 집 거실로 들어왔다.
태몽이었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지만,
이상하게 따뜻하고 든든한 꿈이었다.
2020년 4월 2일, 임신 39주 2일째 되는 날.
3.9kg의 건강한 첫째 딸,
토리가 무사히 지구별에 착륙했다.
긴 여정 끝에 맞이한 만남.
나는 자연분만으로,
기적처럼 아이를 품에 안았다.
남자친구에서 남편이 된 그가
탯줄을 잘랐다.
내가 진통을 겪고 있을 때
밖에서 대기하면서 눈물을 흘렸는지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가 나를 자신의 핸드폰에
'선물'이라고 저장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