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지 Feb 16. 2016

당신의 속살을 방목시켜라   

오래된 일상의 재구성  

   

나는 비겁한 몸매를 가졌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 몸이 우스꽝스럽게 변해 버렸다. 스타킹을 더  치켜 올려 똥배를 숨기고 겨우 쓸어 모은  새가슴은 뽕을 넣고 부풀려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만의 비밀이 들킬까 눈에 속눈썹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늘 껄끄러운 기분이었다


나 인척 하는 내 자아, 그 지금의 모습이 내 삶이다. 이 모든 과정은 내 생각에 부족함을 채운다기보다 가리는 것에 더 급급한 처량한 나와 조우하게 해준다. 집에 돌아오면 남들과 똑같은 천 조각을  벗어던지고 비슷한 색깔로 색칠된 얼굴을 새 빠지게 지운다. 아무도 나를 안 보니 그제야 본래 내 모습이 훤히 보인다. 사랑스럽지도 혐오스럽지도 않은 이 기형적인 모습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다. 내가 원하는 것은 가린 채 세간이 떠들어대는 일들에 맞춰 살아가는 지금은 늘 불편함이 마음을 긁고 있다. 


왜 나이를 먹을수록 시작이 두려운 건지 모르겠다. 적어도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느낌만 가득하다. 분명 그 상실감은 내 존재로부터였다. 묵묵히 안정을 찾아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과 어차피 오늘과 같을 내일이 삶에 큰 기대를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내가 다시 돌아와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이 뒤쳐지지는 않을까? 



하지만 내가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걸어야 할 의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것이 좋고 저것이 맞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들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내 모습이 방랑과 시간낭비로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나만의 시간을 살아보고 싶었다.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시간,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던 주변의 목소리와 안정된 생활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준비했다. 


“2년 간 회사를 다니며 모은 800만 원으로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열심히 지도 속에서 내 목적지를 찾아 나섰다. 부지런히 찾아보았지만 생각보다 영어를 배우며 유럽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영어공부만 한다면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가 앞 다투어 경쟁을 했겠지만 이미 내 마음속에선 탈락을 했다. 사실 가보진 않았지만 나라 이름들이 꽤 익숙하게 들려서인지 별 매력이 없었다. 물론 위치적으로 유럽과 너무 멀기도 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구라파라는 좋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구린 날씨와 내 분수에 맞지 않은 물가가 일찍 발걸음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냥 호주로 가버릴까 고민을 하던 중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통화를 하게 되었다. 


 “ 몰타 어떻노? 영국 머시마들 글로 놀러 마이 가든데?”


무심코 뱉은 친구의 한마디는 나를 사로잡았다. 어쩌면 몰타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봐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몰타를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저렴한 물가에 영어공부를 하며 유럽여행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조금 특별하게 들리는 ‘몰타’라는 이름. 어느새 나는 그 낯선 이름에 푹 빠져 버렸다. 


당신의 속살을 방목시켜라. 내 자아가 나에게  내뱉은 한마디이다. 이 말은 홀딱 벗은 바바리맨이 되라는 소리도 아니고 진짜 속살을 여기저기 내보이며 풍기문란으로 쇠고랑 차라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다. 뭐든지 하고 싶다면 괜찮다고 가둬두지 말고 그냥 나를 믿고 내버려 두라고 한다. 하고 싶은 말, 숨겨왔던 행동, 나를 조여 왔던 모든 것을 다 풀고 신나게 살아보라고 말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인생 아닌가? 


그래, 한번 벗어던져 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