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교통사고 세계 최저 수준 스웨덴의 교통문화
며칠 전 한국에서 벌어진 사고 소식에 가슴이 아팠다. 음주운전자가 지난 8일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자신의 차량을 운행하다 인도로 진입, 보행중이던 어린이 4명을 들이받는 사고가 난 것이다.
대낮에 그것도 인도를 걷고 있던 아이가 학교 앞에서 만취운전자 차에 치여 숨지는 세상이라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길래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일까?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어른으로서 사태의 심각성을 통감하게 된다.
언제나 사람이 먼저인 스웨덴
스웨덴에 7년째 거주중이지만 한국과 비슷한 스쿨존 교통사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특히 대낮에 음주운전 차량이 스쿨존을 진입하는 건 더욱더 상상이 안 된다. 스웨덴 학교 주변은 어린이 보호구역을 의미하는 샛노란 횡단보도, 신호등도 설치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를 대신해 그의 아이들을 픽업하러 집 근처 초등학교에 가던 길이었다. 올해 6살이 되는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나 학교에 혼자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이는 가을부터 친구 아이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다. 집에서 도보 5분 거리라 가깝긴 하지만 차도도 있고 아직 어려서 당연히 혼자 보내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길 하는데 아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한다.
"엄마, 여기 안 위험해."
아이 스스로 등교길을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노란색 어린이 보호구역이 스웨덴 스쿨존에는 없다. 그렇다고 다른 색깔로 안전 구역임을 알리는 것도 아니다. 일반 도로와 똑같다. 다만 스웨덴 운전자라면 별도로 스쿨존이라 규정 짓지 않아도 30km 속도 제한 표지판을 보고서 아이들이 많은 지역임을 인식하게 된다.
스웨덴은 철저히 보행자가 우선인 나라이다.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보이는 보행자를 확인하고서 서행을 하는 운전에 적응되어 있다. 이는 모든 운전자가 지켜야 할 의무로 스웨덴에서는 당연시 여겨지는 행동이다. 차가 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운 게 아니라 당연히 차는 내가 길을 다 건널 때까지 멈춰 있어야 한다.
만약 길을 건너려는 어린이를 보고도 지나가는 차가 있다면 "저 사람은 분명 스웨덴에서 면허를 따지 않았을 거야" 말이 나올 정도로 보행자를 무시하는 운전자는 스웨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스웨덴에는 유독 회전 교차로도 많다. 특히 학교 건물이 도로 옆에 위치한 경우에는 대부분 회전 교차로가 설치되어 있다. 차량은 교차로 진입을 위해 30km 미만으로 감속하게 되는데 이는 어린이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가 30km로 달리던 자동차와 충돌했을 때 사망할 위험은 10%이지만 50km면 사망확률이 80%로 훨씬 높아진다. 서행을 할수록 제동 거리가 짧아져 교통사고 확률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스웨덴 운전자들은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는 아이들에게 손으로 지나가도 된다는 제스처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특히 반대편 차선에 차량이 없다면 눈맞춤으로 어린이들에게 보행 신호를 보낸다.
아직 성장 중인 아이들은 성인보다 시야가 좁고 근거리와 원거리 초점 전환이 어렵다. 게다가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통제 능력이 떨어져 충동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운전자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조심한다.
스웨덴은 어린이 교통사고에 있어서 세계에서 안전한 국가 중 하나이다. 스웨덴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스웨덴 교통사고 전체 사망자 210명 중 18세 미만은 10명으로 집계되었다. 스웨덴은 OECD 회원국 기준 (2021년) 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2명으로 전 세계에서 최저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 30년 동안 어린이 관련 사망 사고 건수가 절반 이상으로 감소했는데, 1990년대 초 연간 80-100건, 지난 10년 동안 연간 25~40건으로 줄어들었다.
스웨덴은 1952년 세계 최초로 교사들을 위한 교통 메뉴얼을 스웨덴 국립도로안전협회(NTF)와 국립 교육위원회의 공동 작업으로 제작한 바 있다. 이는 이미 70년 전부터 안전한 어린이 교통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세계 최초로 안전벨트, 에어백, 차일드 시트, 부스터 시트 개발, 만 4세까지 후향식 카시트 등 차량 내 아이들 안전에도 독보적인 스웨덴이지만, 그 안전 DNA는 차량 밖에서도 아이들을 지켜주고자 노력한다.
스웨덴의 '비전 제로' 프로젝트
1997년 스웨덴 정부는 도로 안전을 위해 비전 제로라는 프로젝트를 세웠는데 교통 사고로 인해 사람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지 않는 게 목표이다.
이처럼 스웨덴 사회가 강력하게 추구하는 '도로 위 안전'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이는 사회가 지속적으로 보행자 보호 인식을 강화시키며 안전 운전을 생활화 하게 만든 덕분이다.
스웨덴에서 3.5도 이상 술 판매는 국가가 통제하고 있다. 시스템볼라겟(systembolaget)이라는 국영주류판매소를 통해서만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술을 사는 게 한국만큼 편리하지 않다.
게다가 직장인 대부분이 자가용보다는 교통비 절감을 위해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스웨덴은 대리운전 문화도 없기 때문에 누군가 운전을 대신해줄 수도 없다. 그러니 자가용으로 출근하던 사람들도 술 약속이 생기면 차를 집에 놔두고 오게 된다.
자동차, 운수업 관련 종사자들은 랜덤으로 마약, 혈중알코올농도를 불시에 업무 도중 체크 당하기도 한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도입된 시동잠금장치(Alkolås)는 장시간 운전을 하는 대형화물트럭 기사들 차량에 설치되어 있다. 또한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는 이 장치가 장착된 차량에서만 운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먼저 바뀌어야 할 건 어른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의 어린이 사망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게 바로 자동차 사고이다. 자동차는 기술의 발전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해지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연약한 존재이다.
뉴스를 보니, 늘 그렇듯 이번 스쿨존 음주운전 사망사고 이후 경찰은 음주운전 집중 단속을 하고 지자체 단체장들은 분주하게 주변 어린이 보호 구역 점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음주운전자는 여전히 적발되고, 시설물을 보완한다 해도 사고를 100% 막아준다는 보장은 없다.
먼저 바뀌어야 할 건 어른들이다. 노란색 구역 안에서 만큼은 우리가 어떻게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기다림과 따뜻한 눈빛 대신 서두름과 경적을 울리진 않았는지 말이다. 운전자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사고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강력한 울타리가 아니라 울타리가 없이도 아이들이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피해를 당하는 아이들은 계속 나오고 울타리만 계속 겹겹히 쌓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