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로 포장하기엔 감당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요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있다. '산후조리원'.
이 드라마가 시작한 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종종 공감의 메시지들이 뜨곤 했다. 울면서 봤다거나 내 이야기 써놓은 것 같다거나. 아기를 낳은 주변 사람들의 간증 같은 메시지들이었다.
궁금증으로 주요 클립들만 모아 놓은 영상을 몇 번 본 뒤 이 드라마는 극 현실주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과장되거나 미화된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앞으로 맞이할 미래가 드라마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극 중 주인공인 엄지원과 박하선은 대립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워킹맘과 전업주부. 그 카테고리 안에서도 아주 성공적인 커리어를 달리는 대기업 상무와 인스타그램 스타급의 쌍둥이 맘.
극명하게 다른 두 사람의 비교를 통해 엄지원이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엄마로서는 초보중의 초보임을 더욱 대비하며 보여준다. 사실, 그 누구가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개인으로서의 행복감을 느끼며 사는 엄지원, 엄마로서의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쉽게 만날 친구도 한 명 없는 박하선의 삶.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도 힘들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떨까?
사실 나는 줄곳 스타트업이나 젊은 기업을 다녔기에, 회사에서 임산부를 본적이 전혀 없다. 나이가 많아봤자 35살 정도의 미혼 여성들이었고, 워커홀릭이라는 칭호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는 성공한 여성들이었다. 나의 20대는 그들을 동경하며 지나갔다.
단 한 번도 아기를 잘 키워내는 사람에 대한 동경을 해본 적이 없었다. 육아를 위해 그들이 감내하기로 한 수많은 것들이 아쉬워보이기만 했다. '왜, 그렇게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늘 마음 한편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나는 모순적이게도 '아기의 주 양육자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으며, 아기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는 찾기 위해 늘 분주히 자기 계발을 해왔다. 그래서 더욱 아기를 낳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이상이 나의 현실을 따라가기엔 감래 해야 할 것이 많았으므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리더가 얼마 전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 없이 복직했다. 그녀의 일상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재택근무가 많아졌고, 실제로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팀원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팀원들의 업무가 팔로우되지 않는 경우도 늘어났고, 다수의 사람들의 입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녀가 일을 내려놓고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며 푸념하기도 했다.
그녀에 대한 푸념이 웃기게도 3개월 차 임산부인 나는 매일마다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우울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핏덩이 아기를 두고 리더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복직한 그녀도 자리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의 기세에 꺾여 돌아오지 못하게 될까 봐, 악착같이 버틸 것이다. 나의 한 치 앞이 그녀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료들과 푸념을 하는 것이 불편하였다. 그녀를 옹호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신세였다.
주변에서 워킹맘의 성공 사례를 본 적이 없었다. 성공사례를 찾기엔 육아는 전쟁이었고, 존재감을 뽐내며 사회생활을 해내던 초보 엄마들은 패잔병이었다. 아기를 부모님께 맡기고 복직한 친구는 6개월 만에 눈물을 훔치며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남편보다 더 벌이가 좋았던 친구는 육아휴직과 동시에 생활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기가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 것은 어쩌면 환상이 아닐까?
그러던 오늘은 이런 뉴스 기사를 봤다. '공무원처럼 육아휴직 3년 쓰고 싶어요'. 다른 기사와는 다르게 1000개가 육박하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마음이 일렁거리고 참담해졌다.
댓글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그럼 너도 공무원을 해라'였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온 이야기는 '의무로 육아휴직 3년 줘야 한다고 하면 누가 여자를 고용하겠냐'는 의견. 나도 이 의견에 솔직한 마음으로 동의한다. 세 번째는 '육아휴직 3년 하고 돌아온 직원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냐'는 것이었다. 맞다. 동의한다.
나는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와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광고 시스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는 콘텐츠들은 하루만 멀리해도 도태되는 기분이 든다. 그런 필드에서 3년의 공백 후 자리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 때는 말이야'를 남발하는 감 떨어진 애 엄마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른다.
3년은 무슨, 3개월만 쉬어도 불안할 것이다.
근데, 아기의 가장 중요한 첫 3년은 누가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시터 이모님? 부모님? 누가 아기의 인격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3년을 보장해 준단 말인가. 나는 아기에 헌신하는 엄마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내 아기를 좋은 사람으로 키워내고 싶다
오늘 하루도 나는 '나'와 '엄마'의 삶을 배회한다. 좋은 사람을 키워내고 싶은 욕심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멋진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