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과 모성애는 별개다_2
오전부터 시작된 진통은 12시간을 넘겨가고 있었다. 진통이란 건 서서히 강도가 세진다. 처음엔 배가 살살 아픈 정도지만 나중에는 숨을 쉬기도 힘든 지경이 된다. 출산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순위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끝판왕 고통이라고 한다. 그럼, 이 고통이 언제 끝나느냐? 그건 모른다. 정확한 건 아기가 나오면 끝난다.
출산을 위한 진통은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발생하는데, 골반 뼈를 벌리고 배를 수축하는 자극에서 비롯된다. 말로 하면 너무 쉬워서 화가 날 정도로 아주 많이 아프다. 나의 경우 오른쪽 골반으로 진통이 왔는데 그때의 아픔은 마치 능지처참을 당하고 있는 듯함이었다. 사지가 찢겨나가는 것처럼 골반에서 다리가 분리되어 가는 것처럼 아팠다. 이 모든 고통은 아기가 세상으로 나와야 끝난다. 자궁경부가 10CM 이상 열려야 아기의 머리가 산도를 통과할 수 있는데, 진통이란 건 이 자궁경부가 열리는 시간 동안 겪어내야 하는 아픔이다. 상상해보라. 다리 사이에 두꺼운 책 하나만 껴놔도 불편한데 무려 10cm가 넘는 아기 머리가 사타구니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니 출산의 순간이 아름답기만 한건 아니다.
다시 비운 했던 나의 출산 과정으로 돌아와 보자. 오전 10시에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자궁문이 4cm 열려있었다. 아직 진통은 참을만했다. 아기도 잘 놀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앞으로 6cm만 더 열리면 사랑스러운 아기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오후 2~3시쯤이면 아기가 나오겠거니 했다. 출산과정을 도와줄 분만촉진제도 맞으며 곧 만나게 될 아기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3시까지 자궁문은 열리지 않고 극심한 진통만 계속되었다. 무통주사를 외치며 선생님을 찾았고,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아기를 안으면 좋았겠지만 내 경우는 아쉽게도 스펙터클로 넘어갔다. 무통 천국이 지난 자리에는 내 영혼을 집어삼킬듯한 진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지가 뜯겨 나가는 고통이 다시 시작되었고 한층 심해졌다. 마치 좀비들이 내 몸을 뜯어먹고 있는데 죽지는 못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시간은 또 흐르고 있었고 아기는 저녁 8시가 넘도록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더 이상은 무통주사도 안되고 그저 아기가 빨리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엔 없었다. 거듭되는 내진에도 자궁경부는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6cm가 열렸다는 희망찬 소식을 듣던 그 순간 '퍽'소리와 함께 다리사이가 뜨거워졌다. 양막이 터지면서 양수가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 순간 간호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고 갑자기 뛰어 나가셨다. 그 후 당직의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아주 침착하게 무서운 이야기를 내뱉기 시작하셨다.
'진통이 시작되면 아기도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아기가 극도의 스트레스받았을 때 뱃속에서 태변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지금이에요. 아기가 긴 시간 동안 진통하며 힘들었는지 뱃속에서 태변을 본 상태고, 양수가 오염되어 있어요. 아기가 양수를 들이마셨을 가능성이 높아요. 자궁경부가 다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엔 지금 너무 시간이 없어요. 태변은 끈적하고 아기가 들이 마실 경우 폐 손상이 될 수 있어요.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되면 아기가 큰 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할 만큼 위급해질 수 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말을 듣고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산모님이 지금까지 진통하시는 걸 보니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자연분만해내실 수 있을 것 같지만, 아기가 위급해질 수 있습니다. 두 분께서 상의하시고 최대한 빠르게 수술을 결정해주세요.'
상의랄게 있었을까?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소리쳤다.
'선생님 빨리 우리 아기 꺼내 주세요, 수술해주세요. 빨리요.'
순식간에 나는 수술대로 옮겨졌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출산의 순간이었다. 남편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들어온 수술방에서 나는 공포와 설움으로 눈물범벅이 되었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진통에 절규하고 있었으며 과호흡으로 인한 호흡 곤란이 오고 있었다. 수술대 위에서 맞이하던 출산의 마지막 순간은 너무 춥고 무서웠다. 나를 다독이며 빨리 재워주시겠다던 마취과 선생님의 목소리가 위안이 될 정도로 나는 너무 무서웠다. 정말이지, 다시 생각해도 너무 무서웠다.
클리셰처럼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기며 잠들었다.
'선생님 우리 아기 무사히 꺼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