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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로움 Aug 06. 2021

산후우울증이 시작된 흔한 이야기

산후우울증과 모성애는 별개다_1

당신이 생각하는 출산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흔하게는 축복과 행복의 순간 혹은 고통스럽고 아픈 순간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10달을 뱃속에서 키워 만나는 미지의 세계인 아기를 만나는 출산이라는 이벤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누구보다 즐겁게 임신 기간을 보내려고 노력했고 꽤나 성공적으로 즐겨왔던 나였다. 가끔씩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만나게 될 아기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진통이 시작된 이른 아침에도 나는 드디어 오늘이구나 하며 조금은 들뜬 마음이었다. 진통은 아기를 만나기 위해 당연하게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고통이 배가 되는 순간순간이 아기와 더 가까워진다고 생각했기에 두려운 마음도 없었다. 그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임신부터 출산까지 그 모든 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산후 우울감을 느낀 뒤부터는 출산을 하러 날부터 겪어온 한 달 사이의 그 모든 시간이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 어느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 아닐까 하는 거리감이 들었다. 


나는 임신기간 내내 아기를 건강하게 만나기 위해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귀찮았지만 꼬박꼬박 임산부 요가 수업을 들었다. 아기를 느끼며 교감하는 명상도 빼놓지 않았다. 새로 이사 온 동네 골목을 다 외울 정도로 산책도 열심히 했다. 매일매일 아기를 느끼며 순산만을 위해 노력했다. 7개월을 꼬박 아기를 잘 낳기 위한 운동을 했으니 솔직하게 정말 노력한 엄마라고 생각했다. 그것뿐 아니다. 출산의 순간 더 빨리, 잘 아기를 세상으로 내보내 주기 위해 출산 특강까지 들으러 다니며 힘주는 방법, 호흡 방법까지 연습하며 그날을 기다려왔다. 마치 출전을 기다리는 선수처럼 이미지 트레이닝부터 실제 훈련까지 기량을 갈고닦으며 나의 노력의 결과를 확인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릴 지경이었다. 


내가 출산 후 겪은 이 심경의 변화들은 어쩌면 예상하지 못했던, 상상조차 못 해본 출산 과정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타고나길 모성애가 강하다고 생각해왔지만 뜻밖에 만나게 된 산후우울증이라는 깊은 동굴은 점점 더 어두워지기만 했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동굴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건 출산 후 3주 차부터였다. 


아기를 낳은 지 21일 만에 혼자 산책을 나왔다. 밖에 나와있으니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몸이 아프고 여전히 내게는 출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지만 아기를 낳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로 생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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