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육아라는 헬게이트 앞에 선 만삭의 임산부
아기는 10개월을 꼬박 채워 나올 요량으로 내 마음을 애타게 한다. 오늘인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임신의 마지막 시간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더디게 지나간다. 임신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때가 되면 출산 소식을 전해 오는 것을 보며 내 뱃속의 아기도 어려움 없이 나오겠거니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하루에 만보씩 걷고, 요가를 하며 아기가 자궁문을 향해 한층 더 내려앉기만을 기다려도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초산은 늦는다더라
나의 경우가 될 줄 몰랐다. 그리고 초산이 늦어도 예정일까지 넘길 줄은 몰랐다. 예정일을 일주일 남기고부터는 몸이 힘든 것도 그렇지만 마음이 초조해 우울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임신이란 건 시작부터 끝까지 내 예상처럼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임신의 막바지가 되면 산모의 몸은 한번 더 변화를 겪는다.
첫째로 동그랗고 봉긋하던 배가 눈에 띄게 아래로 축 처진다. 이전에 농구공을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면, 막바지에는 물풍선에 모래를 가득 채워 배에 매달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이 된다. 명치 부분에서 느껴지던 아기가 한참 아래에서 느껴지기 시작하고 명치 부분은 텅 빈 것처럼 말랑말랑 해진다. 이때, 마지막까지 잘 유지하던 아랫배 살가죽이 쩍쩍 갈라지며 트기 시작한다. 하얀 살결 위에 빨갛게 갈라진 튼살을 보는 마음이란..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심지어 아랫배쪽은 거울로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배가 나와 실제로는 출산을 해야만 튼살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둘째로 모든 뼈 마디가 아파진다. 출산이 임박해질수록 골반뼈를 열기 위해 릴락신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하고 이 호르몬이 모든 뼈마디의 결합을 헐겁게 만든다. 헐거워진 뼈마디들은 제마다 비명을 지르며 통증을 유발하는데, 제일 큰 고통은 손가락과 골반이다. 꼬리뼈와 골반 주변부 근육을 스트레칭으로 계속 풀어주더라도 임시방편이다. 헐거워진 골반뼈를 지탱하기 위해 과부하로 일하고 있는 근육들은 곧 끊어질 것처럼 아파진다. 게다가 제일 자주 쓰는 관절인 손가락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기 힘들 정도로 온 마디마디가 아프다. 이렇게 통증을 겪어보면 일상생활에서 몸의 여기저기에 관절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들이 온다.
셋째로 출산 임박에 대한 스트레스와 호르몬 이상으로 감정의 제어가 잘 안 되는 순간들이 시작된다. 출산으로 가는 과정은 모든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순간들이다. 여자는 호르몬의 노예라는 것이 얼마나 불가항력적인지 알 것이다. 우리에겐 생리라는 지독한 친구가 있기에.. 한데, 그것보다 더 큰 감정 제어의 난항이 찾아온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호르몬과 스트레스의 콜라보란 정말 대환장파티다. 임신 후기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덧 붙여진다. 초산은 늦는다더라, 누구는 2시간 걷고 와서 그날 병원에 갔다더라, 계단을 20층 올랐더니 애가 나왔다더라 등등 제정신으로 들어도 숨 막히는 이야기를 수많은 입을 통해 들어야 한다. 비교가 계속되면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이 느껴지고, 그 원인을 찾고 싶어 지게 마련이다. 출산이 늦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은 없다. 모든 것은 아기 마음으로 귀결된다. 아기가 나오고 싶어야 나오는 거라는 운명론은 마치 통로 없는 거울방에 갇힌 것과 같이 느껴졌다. 인생을 살면서 고통의 시작을 때가 또 있을까 싶은 나날의 연속되는 시기가 바로 임신 막바지이다.
넷째로 가진통을 수시로 느낀다. 다양한 종류의 가진통이 오기 시작한다. 아랫배가 싸르르, 찌르르하며 아프기도 하고 자궁의 수축으로 배가 단단해지기도 한다. 온몸에 힘이 주르륵 빠져 일어나지도 못하겠는 상황이 오기도 하고 골반, 허리 등으로 강한 강도의 통증도 경험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오른쪽 골반 안쪽으로 통증이 나타났는데 실제로 진통도 오른쪽 골반으로 왔다. 참고로 진통이란 건 사람마다 다른 부위로 찾아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배뿐만 아니라 골반이 될 수도 있고, 허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앞선 이야기들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인 문제를 겪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임신이나 출산이 아주 수월한 일이고, 누군가는 출산하며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겪은 것 외에도 수많은 증상을 겪어내야 하는 것이 임신이기도 하다. 내 몸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 임신이고 출산이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임신과 출산을 곁에서 지켜본 적이 없었기에 그 모든 것에 무지했다. 내 직장에는 임신한 선배가 없었으며, 각자의 삶으로 바쁜 친구들의 임신 과정은 SNS로 보는 것이 전부였다. 육아를 제일 자세하게 볼 수 있는 건 TV 프로그램이 전부였는데 수많은 편집 끝에 보이는 육아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결국 나는 한 생명이 탄생하고 길러지는 그 숭고한 희생의 과정을 하나도 모르는 무지렁이였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젊은이들(남, 여 모두)이 얼마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있었을까? 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애는 절대 못 낳겠다 싶을 수도 있다.
친구들과 대화 중에 아기 엄마인 친구가 곧 출산을 앞두고 있던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곧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내가 우린 왜 헬게이트를 자처해서 여는 건지 되물었더니 싱글인 친구가 답했다. '아무도 그 헬게이트를 열지 않았으면 우리도 존재하지 않았겠지?'
인생이라는 건 참 단순하고도 복잡하다. 희망과 행복으로 시작해서 수많은 난관을 겪어나간다. 행복과 난관의 빈도는 모두가 다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결혼을 하면서 한번 느꼈고, 출산을 하며 또 느낀다. 지금부터는 육아의 모든 순간에서 느낄 것이다.
헬게이트를 열고 걸어 들어가는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근데, 수많은 행복한 순간이 있다. 지루한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과 꼬불꼬불 정겨운 시골길을 달리는 게 다르듯 출산과 육아라는 게이트를 지나는 내 인생은 다양한 꽃들과 나무를 만나고 아기자기한 풍경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그 모든 순간이 지나고 나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되어 두고두고 꺼내어 이야기 나눌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니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정겨운 시골길에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인생의 끝자락에서 도란도란 나눌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