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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로움 Oct 18. 2021

명령어 : 뒤집기를 하시오

세상을 바르게 보기 시작하는 아기

뒤집기를 한다. 실패를 반복하지만 실패  다시 시도하기까지는 5초가  안걸린다. 아기는 끊임없이 도전한다. 땀이나고 거듭되는 실패에 화를내고 짜증을 내지만 포기하진 않는다.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아기의 자세는 전보다  느려지고 어설퍼지지만 포기하진 않는다. 아기의 정신건강을 위해 엄마가 개입해서 안아 올려줄때까지도 도전은 계속된다. 실패를 거듭한 아기는 안전한 엄마의 품에서 설움을 쏟아낸다.


아기가 뒤집기를 이렇게까지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엎드려 있을때 표정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늘 누워서만 세상을 보던 아기가 드디어 똑바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로하여금 원동력을 주는게 아닐까? 엎드려서 눈앞의 세상을 바라보는 아기의 표정은 정말 맑고 행복해보인다. 아기의 경이로운 마음은 한껏 올라간 눈썹과 씰룩거리는 입꼬리가 대변한다.


이렇게까지 행복한 표정을 보고 난 뒤엔 아기의 성장을 응원하게 된다.


남편의 다급한 부름으로 잰걸음으로 도착한 아기방에선 생애 첫 뒤집기를 성공하고 있는 아기의 뒷모습이 보였다. 낑낑거리며 몸통을 바닥에 거의 내려 놓던 참이었다. 그동안 다리를 들고 이리저리 흔들고 가끔 옆으로 누울 수 있어지는 정도의 발달을 보였지만 이렇게 빨리 뒤집기를 할 줄은 몰랐다. (일반적으로 우량아는 몸이 커서 운동발달은 조금 늦을 수 있다고한다. 우리집 아기는 우량아 중에도 상위권이다.) 4개월정도 되면 뒤집겠거니 했는데, 100일이 이틀 지난 어느날 저녁 갑자기 뒤집기를 성공해버렸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아기가 성공하는 그 모습을 남편과 함께 목격하게 된건 정말 행운이었다. 육아의 감격스러운 추억이 하나 생긴 셈이다. 흥분한 나머지 놀라움의 환호성을 질렀고, 눈물이 조금 세어나왔다. 가르친적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성장하는 아기를 보며 인간,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 느껴졌다고 하면 오글거리지만 정말 그랬다.


한번 뒤집기를 성공한 뒤로 아기는 잠들기 전까지 뒤집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마치 스위치가 켜진것 같다. 요즘 아기의 머릿속 알고리즘은 이렇게 움직이는게 아닐까?


눈이 떠졌는가? -> 엄마가 나를 봐주었는가? -> (YES) 무거운 머미쿨쿨을 치워 주었는가? -> 뒤집기 start

                                                                           -> (NO) 소리를 내어 엄마를 불러본다.


시도때도 없이 뒤집기를 하는 아기는 전에 없던 시련을 경험 하는 듯 하다. 3일동안 첫 성공을 빼고는 단 한번 성공했으니 수 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음은 지레 짐작할 것이다. 그래도 좀 더 이해가 되도록 이야기 하자면, 1시간 내내 뒤집기를 시도한다. 동작과 동작 사이의 쉬는 시간은 5초남짓이다. 몸이 뜨끈하고 땀이 날정도로 열심히다. 이런 시간을 밥먹고 한시간, 자고 일어나서 한시간씩 3~4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아마 그냥 두면 더 오래할 것 같은데 아기가 너무 힘들어해서 내가 중간에 잠시 쉬도록 안아주고 다른 곳으로 옮겨 놀아준다.


아기와의 교감이란걸 느낀지는 한달이 넘은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교감을 느낀다. 동작이 실패할때마다 아기는 나를 바라본다. 민망한 표정을 지을때도 있고, 화가 난 표정을 지을때도 있다. 실패한 뒤 자존감을 회복하는 시간임이 분명하다는것이 느껴진다. 아기를 응원하고 복돋아주고 가끔은 엄마찬스로 뒤집기를 도와주기도하며 아기의 성장을 돕는다. 아기가 포기하지 않도록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아기가 나를 의지하고 실패를 딪고 도전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때 내가 이 아기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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