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Dear 2020

한 달 묵혀 감칠맛 나는 2020년 회고

작년 연말에 오롯이 한 해를 돌아본 여유를 가져본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연말 회고와 소통을 위한 템플릿을 노션으로 만들었죠. 그랬더니 결국 그게 일이 되버려서 그 여유가 바사삭 튀겨진 슬픔.


1년을 통으로 돌아보려니 무언가 용량의 압박도 상당했는데요. 그래서 설익은 밥상에 손님을 초대하기 보다는 나 홀로 회고에 만족했습니다. 내년엔 한 달마다 부지런히 하겠노라 다짐하면서요.


2021년 1월을 보내고 나니 대충 버무려 놓았던 재료들이 잘 숙성한 듯 하네요. 새로운 시작은 과거의 나를 대조적으로 바라보기에도 좋은 때인듯 하여요 :)




#01. 관종 체험판을 맛보다. 
단, 정품을 뜯어보지는 못하다.


2021년 나의 최우선순위로 미디어라는 키워드를 두었다. 그래서 최근 농담반 진담반 관종이라는 키워드를 많이 쓰는데, 나에게는 나름 얽힌 사연이 있었다.


2020년 새해는 참 무기력하게 시작했다. 일과 삶의 커다란 부분을 다 정리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코로나가 발발했다. 퇴사 후 2년 동안은 해보고 싶은 모든 걸 제약없이 해보기로 했는데, 막연하게 이런 삶이 지속가능할지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 외부적 혼돈의 한 가운데에서, 집콕하면서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들을 소환하곤 했다. 나를 괴롭혔던 3가지 사건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1) 내가 열정적으로 가꾼 일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2) 나도 연사해볼래 라는 말에 "너가 할 수 있는게 뭔데"라는 반문을 구남친에게 들었을 때
   3) 내가 주도적이지 못한 모임이나 회의에서 굉장히 따분함을 느꼈을 때


"그래, 나는 팔로잉보다 내가 주도적인게 직성이 풀려."
"뒤에서 불편해하는 존재가 될 바에 의장이 되자."
"나의 자리는 기다린다고 남이 만들어주지 않아.
"누군가에게 기대지마. 내 자리는 내가 만들어야 해"



그리고 당장 2020년 1월 17일 노션 '2020 관종 프로젝트'라는 노션 페이지를 열었다. 하고 싶고 쓰고 싶은 글들을 무작위로 나열했다. 아주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보았다. 엄청난 정보성 글은 아니지만, 사람들에 조금이나마 영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작성할 때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함께 프로젝트했던 프리랜서 이은지님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광고 겸 유튜브에 출연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과감한 타이틀에 나의 프리랜서 스토리를 공유했는데 어지쩌찌 다음 메인에도 가고, 내가 뭐하고 사는지 주변에 얄팍하게나마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인 페이스북에 올려서 이렇게 많은 반응이 나오기도 처음이었다.

.

유튜브가 크게 바이럴 되면서 포털 사이트에서 악플 세례을 받기도 했다. 악플을 얼마나 잘 견디는 뇌구조이냐에 따라 관종의 적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나는 포털에 달린 댓글을 작사의 소재로 활용하여 또 다른 창작을 했다. 이런 나를 보며 생각보다 많이 또라이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어나더 또라이(좋은 의미) 그랩을 만났다. 그랩은 예전에 클래스101에서 만났는데, 함께 PO회의에서 잠깐 스치듯 만나던 사이다. 그러다가 "나, 먼저 갈게" (응? 나도 나중에 그랩이 있는 곳으로 따라 나가는거야?)라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퇴사하고 디지털노마드가 된다고 포부를 밝혔다.


호스팅하는 '스타트업하는 불효자넘들' 모임에 그랩을 초대했다. 오랜만에 보는 그랩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냐?"는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그냥 유명해지고 싶어. 내가 똥을 싸도 박수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아주 파격적인 답변을 받았다. 


그랩을 만난 날 쓴 회고록. 할리우드와 팔로알토 그 사이에서.


8월에는 에릭이라는 또 다른 관종 마피아와 연결되었다. 요즘 마당발은 8개 문어발로 부족하다. 랜선 너머 사람들과 친화력을 발휘하는 에릭을 보고도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원래는 9월 달부터 에릭과 함께 2주 1회 콘텐츠를 배포하려고 했으나... (나 혼자 실패)


이전까지는 나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은 터부시 해왔다. 정말 대단한게 아니면 나서서 얘기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조용히 대단해지는 건 없다. 유저의 반응을 얻어가며 성장하는 프로덕트처럼, 미디어도 마찬가지이다. 대서특필을 가디라기다간 아무 것도 퍼블리싱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완벽주의 붙들고 있다. 정신차리자.


나와 다르게 꾸준한 시도를 한 그랩과 에릭은 지식인 관종(크리에이터)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변명을 하자면 그놈의 월천 인터뷰에 내가 가둬져 버렸다. 왠지 늘 천만원 수익에 가깝게 벌어야 하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래서 관종의 완전체로 거듭나지 못하고, 작년 한 해 프로젝트를 노마드(노가다) 라이프를 살았다. 



#02. 내꺼인듯 내꺼아닌
프로젝트 노마드 라이프


2019년은 함께하는 회사의 1 to 10 혹은 10 to 100을 만들어가는 한 해였다. 2020년은 나 없어도 어차피 잘 될 회사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회사와 일을 해보고 싶었다.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이용관 대표님께서 연결해주신 덕에 빅피처랩과 이 모험을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 없이 뽑아낸 투박한 UX의 제품으로 PMF부터 다시 찾아나가야 했다. 3번이나 제품의 방향성을 바꿀 때마다, 사실상 회사에 리스크를 태우지 않은 나도 감정적 로드가 상당했다. 프리토타입이라는 개념을 쓰면서 가라 제품 페이지를 허구적 상상력으로 찍어내고, 유저베이스가 없는 사이트의 페이스북 광고를 돌려보며... 음 놀랍게도 반응이 없군?을 처음 깨달았다.


그래도 작년에 회사가 Pre A 펀딩을 마무리하는 과정까지 지켜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갓나온 제품이 어떻게 초기 10명의 유저를 얻어내는지 과정을 함께했다. 클래스101, 채널톡과 같은 이미 제품의 눈코입이 있던 회사의 업무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그것은 바로, 


허접함의 순간을 견디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


작년에 가장 꽂힌 아티클은 Paul Graham의 Early Work이다. 허접한 것을 세상에 내놓는 두려움 때문에 진도를 못 나가고 있는 나에게 큰 울림을 준 글이다. 


이 마인드셋에 대해서 가장 잘 알려준게 바로 빅피처랩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극초기의 아이디어나 아웃풋을 대하는 나의 자세에도 많은 변화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허접한 순간의 두려움을 개의치 않고 마구 공유하는 주변 인물들을 리스펙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 프리랜서 2년차로서 여러가지 의미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1) 기존 인맥을 통한 영업이 아니라, 페이스북에 내가 쓴 글을 보고 유입 혹은 전환이 되는 경험

  2) 나의 경험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주 1회 정도 컨설팅 해주는 새로운 수입 유형 개발

  3) 내가 아닌 다른 프리랜서의 데뷔를 도와준 경험

3번을 발판 삼아 개인 프리랜서가 아닌 에이전트 형태로 확장하는 것을 구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수익 배분이 걸린 이슈이고, 나의 인풋에 비해 명확한 윈윈 구조를 찾지 못해 한동안 정체 상태이다. 조금 더 가볍게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 천만원에 집착하며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것은 나의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사람의 꿈을 도와주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시간 자본이 프로젝트에 몰리면서 나의 꿈이 희석되고 있었다.


새로 시작된 1월 달에 새해 버프를 받아 주 100시간 일해보자며, 남의 꿈과 나의 꿈을 병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2주차에 나의 꿈에 대한 진도를 나가지 못했을 때 크게 번아웃이 와버렸다. 지금 들고 있는 프로젝트도 어느정도 마무리하고, 나의 꿈과 일치될 수도 있는 곳에 나의 시간을 쏟아야 겠다.


한가지 확실한건 나는 이런 형태의 직업 구조를 지지하고, 확산하는 에반젤리스트가 되는 것이 나의 30대 전반부의 소명이지 않을까 싶다. 그게 제품이든, 커뮤니티든, 미디어든. 나와 같은 삶의 방식을 세상에 더 알리기 위해서 연초에 아웃스탠딩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03. 나를 지탱한 베이스
끊임
 없이 채워지는 화수분 인풋


최근에 Gradient라는 말에 꽂혔다. 나의 베이스를 하나로 밀기 보다는, 여러가지 색깔을 간직한 채로 살려고 한다. 칵테일로 비유하자면... b52? 다양한 베이스가 섞이지 않은 채 층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각 베이스의 고유성을 가진 채 마시려면 불을 붙여서 샷으로 순식간에 마셔야 한다.


내가 인풋형 인간으로 진화한 건, 2016년 처음 트레바리 서비스를 접하면서이다. 주변에 좋은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네트워크를 두면서 끊임없이 노드가 생성되는 것. 5년 정도 반복하다 보니 완전히 완전히 체화된 베이스가 있다. 바로 리딩.기록.커뮤니티. 


1) 리딩. 2020년은 대학원 논문까지 리딩의 양이 꽤나 많았다. 리디북스에만 벌써 100권의 책이 담겨있다. 주요 키워드는 #인지과학 #감정 #의사결정 #Knowledge Management #비즈니스 #스타트업. 올해는 나의 리딩만큼 아웃풋을 내놓고 싶다. 


2) 기록. 나는 기록에 대한 긱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내 기록을 바탕으로 육체가 없어도 나의 정신이 존속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그래서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사 업무 말고도 노션과 롬에 나의 인지 구조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3) 커뮤니티. 향후 3년은 논스에서 나를 성장시켜줄 자양분을 얻어갈 듯하다. 지적 대화를 채워주기도,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심리적 안정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여기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나의 속이 더 단단하게 채워지고 있다.


4) 꾸준함이라는 신소재도 찾긴 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1년 동안 체지방만 7키로가 빠지고, 근력은 2키로가 증가했다. 몸이라는 것이 한 번에 변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을 지나고 보면 조금씩 변하더라. 뭐든 간절히 바라면 조금씩 그 곳으로 향해 간다는 것을 운동으로 비교적 단시간에 확인했다.


5) 감정에 대한 키워드도 베이스에 추가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광각 렌즈를 착용하고 중립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이에 대해 영감을 받은 책은 대학원 철학 수업 과정에서 리딩한 리사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6) 즉흥성도 빼먹진 않았다. 어쩌면 나의 가장 타고난 베이스이지 않을까? 새로운 기회에 망설이기 보다는, 일단 시작하며 답을 찾아갔다. 중간중간 춤을 추고. 기분이 나면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현자타임과 철학살롱과 같은 먹물충 활동도 타임 슬랏에 넣어가며 지속했다.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가지고 새로운 노드를 만들어낼 줄도 알았다.


2020년의 교훈 3가지 


1. 새로운 기회 막연해보여도, 진행하다 보면 늘 길이 찾아진다. 늘 그러했듯이. 언제나처럼 스윙댄스 출 때처럼 즉흥적으로 받아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도록 하자.


2. 의미있는 실패를 만드는 방법을 배운 나를 보면서 꽤나 기특했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첫 시작이 올해였고, 그게 5년 뒤에 바라보면 리딩/기록/커뮤니티처럼 꽤나 고수가 되어 있을 거야.


3. 힘들고 무기력한 상태를 인생 언젠가 또 마주하면, 또 다시 노션 페이지부터 열어보자. 그게 나의 직관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을 거야. 그 러프한 관종 프로젝트 그 키워드처럼 말야. 그리고 무조건 신발을 신고 세상을 마주하자. 너를 미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도 만날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N잡러에 대한 고찰: 단지 파편화된 노동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