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공간의 조건

혼수 리스트 꼭 다 채우고 시작해야 할까?

by 어떤이

조건부 미니멀리스트


결혼식이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수많은 선택지 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취사선택해야 하는 것이라면, 혼수리스트도 어떡하면 가장 가성비 좋게 원하는 가전을 집에 알맞게 잘 고르냐가 숙제였다. 오빠와 나는 모두 살림살이 노하우도, 가구나 집에 대한 기준도 특별히 없었지만 차이가 있다면 오빠는 살면서 필요한 물건을 들이자는 생각이었고, 나는 어느 정도 기본 물건들은 채우고 시작하자는 의견이었다.




세탁기도 코인 세탁소를 이용하는 것은 어떻냐고 물었던 오빠는 생각보다 극 미니멀리스트였다. 무인 세탁소가 편리한 점도 있지만 1인가구를 위한 편리 시설이란 느낌이 강했던지라 조금 번거로워도 집안에서 세탁기를 돌리며 청소하는 가정적 감성을 원했다. 둘이 도란도란 식사를 할 식탁과 의자, 예쁜 그릇도 새로 맞추고 싶었다. 평소에는 맥시멀리스트랑은 거리가 멀지만 신혼 때만큼은 신혼 분위기에 맞는 물건들로 집을 꾸려야 된다는 일종의 로망이 있었다.


한 번 산 옷은 10년도 넘게 입고 중고 물품도 맘에만 들면 오히려 새 물건보다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때만큼은 새것으로 채우고 시작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채움보다 비움


신혼 6개월 차인 지금. 채움보단 ‘비움’에 가치를 두게 되었다. 어차피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채울 것들이 생겨난다. 결국 공간은 세월의 흔적들을 남겨두게 되어 있으니 미리 애써 모든 것을 채워두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정말 필요한지, 자주 사용하고 나에게 맞는지 알지 못하는 물건들을 미리 사서 공간만 차지하는 것보다 살아가는 일상들이 모여 때마다 필요한 것들이 적재적소에 생겨나는 편이 더 낫다.


데코레이션 역시 필요 이상이면 예쁘지도, 편하지도 않은 법! 적당한 여백이 있을 때 인테리어도 그 빛을 발한다. 본래 멋진 공간의 핵심은 잘 정돈된 수납과 각자의 개성이 묻어난 약간의 물품(또는 작품)으로 꾸며진 공간이다. 그것은 때로 값비싸고 이름 있는 브랜드보다 개인적으로 더 큰 만족감을 주는 요소다.




행복한 공간의 조건은 꼭 새로운 가구와 물건에 있지 않다. 그것들이 잠시 신혼의 로망을 채워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둘 사이를 더 애틋하고 끈끈하게 이어주는 것은 소소하지만 우리만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다. 서로의 취향을 고려해 입양한 고양이(인형) 두 마리는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힐링템, 직접 만든 달력과 그림은 텅 빈 거실을 우리만의 색깔로 채워주는 인테리어 일등공신이다.





모든 게 처음인 신혼. 어떤 가구를 들이냐 마냐 보다 중요한 건 상대방과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성향, 소유물에 대해 갖는 가치관 같은 것들이다. 신혼이니까, 새로 시작하니까 라는 명분으로 모든 걸 새롭게 꾸리려고 하기 전에 한 번쯤 고려해 봄 직한 부분이다. 결혼은 일상의 연속이지 한번 하고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기에, 상대와 내가 함께하는 ‘생활’의 시작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8월부터 시작한 우리 집 '비움' 프로젝트

물건 1000개 버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000개를 버려도 집안에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갖고 있음에도 새로운 걸 추구하나 보다. 당근 거래나 나눔을 통해 건강한 비움을 실천 중이다. 그리고 최고의 제로웨이스트는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리사이클링은 거창한 것이 아닌, 가정에서부터의 작은 결심으로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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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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