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잡힌 빨래와 하트 눈

주부 9단의 핵심은 OOO이다.

by 어떤이

가사노동의 반비례 관계


하루는 오빠가 입을 옷이 없다고 빨래를 해달라고 했다. 빨랫감이 어느 정도 차면 한 번에 빨래를 돌리는데 나보다 옷의 개수가 적은 오빠는 속옷(러닝)이 이미 다 빨래통에 들어가 입을 옷이 없었던 것이다. 아차 싶어 빠르게 빨래를 돌리고 건조한 뒤 베란다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두었다. 그날따라 운 좋게도 빨래 개수가 건조대에 딱 맞게 채워지고 수건과 옷의 비율도 적절해 의도치 않았는데 예쁘게 빨래가 널렸다. 그렇게 각 잡힌 빨래를 본 오빠는 자신의 요청에 바로 응해준 내게 고마웠는지 하트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가사를 대하는 내 마음가짐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는데, 그것은 공동의 일을 누가 얼마큼 하느냐 보다 ‘상대를 위해 하는 일’이라는 점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함께 지내다 보면 누구의 일이랄 것 없이 같이 해야 하는 가사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것을 단순히 처리해야 하는 일감으로 여기다 보면 금방 지치기 십상이다. 때론 나만큼 상대가 하지 않는다고 느껴져 불만이 커질 수도 있고 말이다. 이때 이 일은 나의 수고를 통해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고귀한 행위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일을 대하게 될 것이다. 나보다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것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크기만큼 가사의 부담감은 줄어들게 된다.



요리가 제일 즐거웠어요.


신혼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을 꼽으라면 둘이 함께 요리하는 시간이다. 우리 집 메인 셰프는 오빠고 나는 주로 재료 손질과 같은 서브를 담당한다. 함께 요리를 하다 보니 둘 다 메인이 되는 것보다는 한 명은 서브가 되어 메인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편이 요리의 완성도나 효율성 측면에서도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이 한 팀이 되어 만든 요리를 맛보는 일은 혼자서는 누릴 수 없는 큰 행복감을 안겨준다.




행복한 부부생활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혼자일 때는 각자가 내 삶의 주인공이었다. 함께 할 때는 오히려 상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편이 나에게나 상대에게나 이롭다. 어떤 분야에서 메인이 있으면 다른 한 명은 기꺼이 서브가 되어주는 지혜를 발휘해 주면 좋다. 설거지, 쓰레기 비우기, 방 청소, 빨래 등 여러 가지 가사의 항목 중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에 메인이 되면 된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그 빈틈을 채워줄 서브가 있다면 덕분에 그 일은 더욱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현명한 주부 9단은 모든 가사를 혼자 만능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나의 강점을 잘 알아 적절한 분배를 하고 이타심을 겸비하는 일인 것 같다. 우린 때때로 너무 잘하고 싶어서 관계를 더 망친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도 있다. 때로 모자람과 부족함이 관계를 더 좋게 해주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 완벽한 모습, 모든 것을 척척 잘 해내는 것보다 모자란 부분이 있기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빈틈은 결함이 아니라 함께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질이지 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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