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나의 행복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신데렐라 콤플렉스 벗어나기
일을 할 때나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꽤나 적극적이고 추진력 있는 성격임에도 꼭 이성문제(남녀관계)에만 들어서면 소극적인 스탠스를 취하게 되는 모순이 있었다. 여자가 적극적이면 안된다는 일종의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고 남자가 더 리드하는 쪽을 기대하곤 했다. 그리고 간혹 그 수동성이 만족되지 않을 땐 상대의 나에 대한 애정도를 의심하며 불안해하기도 했다. 이는 서로의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역할 고정관념보다 각자의 성격과 개성을 생각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에 부합해야 된다는 일종의 무의식적 압박감보다 독립적인 원래 성격에 집중했다면 문제는 한층 수월해졌을지도 모른다. 요새 에겐과 테토란 성격 분류법도 있지 않은가. 각 유형은 자신에게 부족한 성향의 이성에게 끌릴 수 있다. 이는 경향성이지 옳고 그름이 아니다.
껍데기는 가라
나는 퍽 사회적인 눈을 의식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해보니, 결혼식이라는 것은 나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포된 하나의 약속이란 점에서 사회적 성격이 주를 이루는 절차적 행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부분은 생각보다 사회적 존재인 우리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시선과 기준이 진정한 내 행복의 조건이 될 순 없다. 우리는 하루라도 더 빨리 사회 일원으로서의 내가 아닌, 존재 자체로서의 나 자신의 행복의 원천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인생의 많은 부분을 낭비할 수도 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바로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스스로 자기 객관화가 잘 된 사람일수록 자신의 욕구를 상대(배우자)에게 투사하는 우를 범할 확률이 낮아진다. 자신의 성격, 감정, 행동 등에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납득할 수 있을 때 타인과의 보다 건강한 관계를 기대할 수 있다.
행복의 방법
일상에서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많이 터득할수록 좋다. 그리고 그 행복은 꼭 옆에 있는 배우자가 100% 채워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행복을 배우자에게서만 찾으려 할 때 우린 쉽게 불행해진다. 사람은 사랑해야 할 존재지 타인의 행복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공허함을 온전히 채워줄 수 있는 건 하나님뿐이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행복한 인생을 꿈꾸는 신데렐라가 있다면, 자신의 주체적인 능력으로 남성을 성공시키는 평강공주도 있다. 각자의 성향대로 자신만의 고유한 행복을 만들어가면 된다. 그리고 그 모양이 어떠하든 진짜 나다운 모습을 찾게 해주는 사람이 진정 좋은 배우자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