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 칼럼을 썼다며 한껏 자랑질한 직후 이렇게 쓰기는 머쓱하지만, 마감은 고통스럽다. 칼럼뿐이랴. 기사는 물론, 이 브런치 스토리 글도 그렇다. 마감은 무섭다.
칼럼을 정기적으로 쓴 지 강산이 바뀌어가지만, 여전히 칼럼 마감 주는 쉽지 않다. 그래, 이걸 써야지, 자신만만했다가도 막상 글을 쓰려고 앉으면 한 문장도 나갈 수 없는 때가 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시작하면 일필휘지 되는 때도 있다. "글이 글을 쓰는" 경우. 얄궂다.
얼마전 인터뷰 현장에서 마주친 문구. 대한민국 발레축제 리허설 무용수들이 남긴 것. 힘내세요♡ by Sujiney
가끔 악몽에도 등장하는 최악의 경우. 칼럼 마감이 5시인데 3시까지도 한 줄도 못 썼던 때다. 애꿎은 커피만 계속 마셨다. 그래도, 마감은 힘이 세다. 어찌어찌 넘겼다. 인생 가장 힘든 1200자를 넘긴 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마셨던 생맥주는 최고로 시원했다. 돈을 받으며 글을 쓴다는 것의 슬픔과 기쁨. 글쓰기 장인 김훈 소설가는 수필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낚시 바늘이 목구멍으로 들어온다는 비유까지 했다.
마감이 사납기만 한 건 아니다. 때론 다정한 구원이 되기도. 마지막을 줄 알았던 사랑의 마지막을 본 다음날, 마감해야 할 글이 없었다면 생을 마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글 마감으로 돈을 벌어 발레학원비를 내고, 레오타드를 사는 입장에선 마감은 이제 평생의 반려자에 가깝다.
그렇다고 마감이 쉬워진 건 아니다. 마감이 일종의 습관으로 체화한 것일 뿐. 제임스 클리어는『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이렇게 썼다. "간신히 시작하고 꾸준히 해나가지만 어느 날엔가 분명 그만두고 싶어질 때가 온다. 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인가 출근하고 싶지 않아 진다. (중략) 글을 쓸 때가 됐는데 갑자기 타이핑하기가 싫어진다. 화가 나거나 고통스럽거나 고갈되었거나 기타 등등의 일이 일어났을 때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전문가는 곧 그 일로 돈벌이를 하는 것. 결국 화가 나도, 고통스러워도, 쓸 거리가 고갈됐더라도 그냥 계속하는 것. 특출난 재능이나 탄탄한 동아줄 인맥이 없다고 해도 아마추어에서 전문가가 되는 열쇠는 다름 아닌 끈기일 터다.
생각해 보면 밥벌이만 그런 것도 아니지. 취미, 내 경우엔 발레 역시 그러하다. 제대로 된 발레를 배운 지 이제 만 1년 6개월. 그런데도 클래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코미디에 가까울 때가 많다. 마음은 발레리나인데 몸은 그렇지 못해서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다리를 어깨까지 들어 올렸다고 생각하는데 수업 영상을 복습하면 에계, 무릎 언저리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내 다리여. 쁘띠 알레그로, 즉 스몰 점프 동작에선 볼썽사납게 여전히 중력에 지나치게 충실한 내 발바닥. 선생님께선 분명 오른손을 앙오로 들라고 하셨는데 당당하게 왼손을 들고 마는 나.
한때는 그런 자신에 화가 났다. 발레 광복 후,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가며 나름 많은 것을 희생했건만,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걸까.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도 결국 안 되는 걸까.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자만이다. 인간의 신체가 성장을 끝내고 급격한 퇴화 곡선에 진입할 시기에 발레를 시작해 놓고, 프로들은 열 살도 되기 전에 시작하는 발레에 안달복달하다니. 뻔뻔하다. 발레는 공평해서, 일정 정도의 노력과 반복, 희생을 필수로 요구한다. 글쓰기도 똑같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18개월밖에 되지 않는 이가 나는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가 통탄하는 것과 마찬가지. 반성한다.
발레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 ballerinaporcelain에서 가져온 사진. 무용수들의 피땀눈물이 서린 슈즈들.
그럼에도 낙담하는 건 지극히 인간적이다. 클리어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자신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그만큼의 성과를 기대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성장과 발전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 아예 오지 않다가, 더디게 오다가, 슬그머니 올라가는 게 성장이라고, 클리어는 설명한다. 그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 '낙담의 골짜기(the valley of despair)'다. 클리어의 책에 나온 아래 그래프를 보면 이해가 쉽다.
제임스 클리어의 책에서 발췌. 저작권 저쟈 및 출판사
"낙담의 골짜기를 견뎌라"는 그의 메시지는 울림이 크다. 낙담의 골짜기를 견디지 못하고, 노력해도 안 되네, 어차피 나는 아닌가 봐, 이런 식의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계속하라는 것. 그렇게 낙담의 골짜기를 지나면 언젠가, 나도 모르게 성장과 발전이 와있다는 게 그의 메시지다.
하지만 그냥 견디기만 하면 너무 힘들지 않나. 살짝 생각해 본다. 그 낙담의 골짜기에도 꽃은 핀다. 시냇물도 졸졸.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옹달샘도 숨어있겠지. 무시무시한 어둠과 맹수만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을 거다. 깊고 험하겠지만, 겸허한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며 때로는 꽃 향기도 맡고 시냇가에서 하늘도 바라보고 토끼와 함께 옹달샘도 마시면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으며 가고 싶다. 열심히 하되, 즐겁게도 하고 싶은 마음.
이렇게 생각한 뒤엔, 앗쌍블레 점프를 말아먹는 내 모습을 봐도 화가 나는 대신 즐거워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인상 쓰고 괴로워한다고 점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웃으면서, 그러나 꾸준히. 허허실실 시간을 보내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알차게 가되, 즐겁게 간다는 것. 함께 하는 발레 메이트들, 그리고 너무도 감사히 나를 지켜봐 주시는 선생님들과 함께라서 든든하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다 보면 질기고 뻑뻑한 내 장요근도, 중력과 너무 친한 내 골반도 언젠가 항복하겠지.
발터뷰 가는 길. 다다다음생엔 인터뷰를 하지 않고 당했으면 좋겠다. by Sujiney
일명 '발터뷰'라는 걸 시작했다. '발레 인터뷰'의 줄임말. 회사에선 이미 날 발치광이로 생각하고 있기에 이해해 주신다, 감사하게도. 재미가 아닌 월급을 받는 일이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그만큼 다른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래도 하는 이유. 발레 무용수 및 예술가들의 말엔 인생의 지혜가 녹아 있어서다. 그 지혜가 나와 여러분 나름의 낙담의 골짜기를 건너는 데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런 얘기들. 강미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인터뷰에서 출산 후 복귀 몸을 만드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나왔던 말. "몸이 제 몸이 아니더라고요. 스트레칭을 해도 출산 전처럼 안 꺾였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꺾어야죠. 매일 조금씩, 그냥, 계속." 국립발레단 김기완 수석무용수가 해준 말도 복기해 본다. "진짜 리허설은 부엌"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설거지할 때처럼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연습을 생각할 정도로 연습을 체화한다는 의미였다. 강미선 수석무용수, 김기완 수석무용수에게도 있었을 터다. 낙담의 골짜기.
취미발레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낙담의 골짜기는 온다. 여러 번. 그러나 그 어둑한 골짜기 안에서도 꽃과 별을 찾아내는 건 각자의 몫.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 "우린 모두 하수구 안에 갇혀 있지만, 그중 누군가는 고개를 들어 별을 본다(We are all in a gutter, but some are looking at the stars)." 이왕이면 꽃을 찾고 별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