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역행자여, 코로 보고 등으로 쉬라

발라레 인생(41) 103번째 브런치 by Sujiney

by Sujiney

지금 이 글을 나는, 서서 쓴다. 골반에 미안하고, 허리가 고마워서다. 이문구 작가는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라고 썼지만, 내 몸은 너무 오래 앉아있거나 꼬여왔다.

다리를 이리저리 배배 꼬아가며 기사 마감을 십수 년. "일어서서는 취재, 앉으면 마감, 누워선 기획"이라는 걸 불문율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업계에서 살아오며 골반은 틀어지고 어깨는 말리고 허리는 굽어졌다. 자업자득. 내 몸을 내가 몰랐다.


로베르토 볼레 & 멜리사 해밀턴 무용수. 몸으로 말한다. 출처 및 저작권 Roberto Bolle Instagram


몸은 전세로 사는 거라는 말. 내 몸이라고 내가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자가(自家) 살이라고 마음대로 쓰다가는 탈이 나고, 결국 병원 신세. 깡통 전세 또는 감당 못할 월세 살이가 돼버린다는 얘기였다.


발레를 배우는 시간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내 몸에 내 맘을 다하는 시간이어서다. 발레의 두 기본은 풀업(pull up)과 턴아웃(turnout). 호흡을 끌어서 당겨 올리고(pull 해서 up), 몸의 거의 모든 관절을 외회전(밖으로 돌리는, 즉 turn 해서 out 시키는 것). 말이 쉽지 - 아니, 말도 어렵지만 - 이걸 몸으로 출력하려면 에러가 나고 만다. 내가 이렇게 답답할진대, 보시는 선생님들은 얼마나 답답하실까.


다 굳은 몸을 끌고 와서 발레를 배우겠다는 내게 선생님들은 다양하고도 재미있는 방식으로 티칭 코멘트를 주신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 것.

정수리에 도라에몽 선풍기를 달았다고 생각하고 풀업을 끝까지 놓지 마세요=최시몬 선생님
숨을 등으로 쉰다고 생각하세요, 등을 느끼세요=정훈일 선생님
엉덩이를 세모로 만들어서 턴아웃 근육을 고정하세요=정혜연 선생님
배가 아니라 등이 길어지는 거예요=조성은 선생님
풀업을 제대로 하면 눈과 입꼬리까지 올라갑니다, 풀업으로 표정도 웃으세요=엄규성 선생님
눈으로 보지 말고, 코로 보세요=박지우 선생님




맘이 편한 자세가 몸엔 불편하다는 걸, 발레를 제대로 배우기 전엔 몰랐다. 발레 무용수들이 왜 그렇게 자세가 꼿꼿하고, 중력을 거슬러 날고 돌고 뛸 수 있는가. 그건 그들이 중력에 충실해지는 가짜 편안함을 의식적으로, 육체적으로 거스르는 마음과 몸의 힘을 길러낸 덕분이다. 요즘 유행하는 '역행자'라는 말을 빌려온다면, 발레는 육체의 역행자 인 셈. 불편한 것을 편하게 훈련시켜 신체적 자유, 중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것이다.

'몸을 잘 쓴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됐다는 것은 발레 역행자의 크나큰 즐거움이다. 최근, 정훈일 선생님의 클래스를 듣고 바로 국립발레단의 '트리플 빌(Triple Bill)'을 보러 간 자리에서 확연히 느꼈다. 예전에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다면, 이젠 무용수들이 자신의 몸의 주인이 되어 무대를 장악하는 과정을 느끼고 감탄할 수 있었다. 고전발레뿐 아니라 현대발레인 '트리플 빌' 같은 무대가 이젠 '지젤'만큼이나 재미있는 까닭.


박슬기 수석무용수의 선명한 전거근을 보며 나는 왠지 눈물이 나왔다. 자신의 몸을 본성과 중력에 역행해서 저렇게까지 단련하기까지의 그 피 땀 눈물을 알 것 같아서. 모든 무용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국립발레단 '트리플빌' 올해 포스터. 내년에도 필관! [출처 및 저작권 국립발레단 인스타그램]



이렇게 말하면 몸의 마스터라도 된 거 같지만, 사실 지금도 '몸을 쓴다'는 의미를 다 알지 못한다. 몰랐다는 걸 알게 된 정도. 선생님들은 항상 끝없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티칭을 해주시지만, 그 말들이 이해가 되어 마음에 입력이 되고, 몸으로 출력까지 되기엔 시간이 걸린다. 예전엔 아예 입력조차 안 되는 외국어였다면 이젠 듣기 정도는 할 수 있는 걸음마 수준이다.

걸음마를 더 빨리 떼고, 결국은 발레를 더 잘하고 싶어서 시작한 본진의 '바디 빌드업' 클래스. 몸의 균형을 잡고 부족한 근력을 키우는, 그야말로 발레의 기초 공사 코스다. 발레계의 피지컬 담당이신 조성은 선생님이 한 명 한 명 잡아주시는 이 코스에서, 나는 '전거근'이며 '중부 승모근' 등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내 몸을 내가 몰랐다. 부끄럽다. 예전엔 코어를 잡는답시고 그냥 '끄응~'하며 잘못된 힘을 줬었다는 걸, 몰랐었다. 그런데도 나는 나름 열심히 하는 데 왜 안 될까, 고민하고 원망했다. 이런 바보.


새 슈즈 vs 헌 슈즈. By Sujiney


'바디 빌드업' 수업 후, 나름 최선을 다해 전거근을 잡고 풀업 하며 축다리를 잡고 골반까지 풀업 하려 하지만, 선생님들은 매 클래스에서 몸을 다시 빚어주시느라 바쁘다. 내 다리를 아령 삼아 웨이트 트레이닝 수준으로 몸의 감각을 일깨워주실 때도 있어서 황송할 따름.

나의 하찮은 그랑 알레르(다리를 90도 이상으로 앞으로 들어 올린 채, 상체 풀업과 하체 턴아웃을 유지하며 뒤까지 원을 그리는 동작)를 보다 못해 다리를 잡아주신 최시몬 선생님처럼. 축다리를 진짜 버틴다고 버텼는데,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뿐이랴. 김현우 원장님, 엄규성 원장님은 나의 알라스콩드 데벨로뻬(옆으로 뻗어서 들어 올린) 다리를 거의 머리에 붙여 주신 뒤 "홀드!"를 외쳐주시곤 하지만, 속절없는 다리는 자이로드롭이 되어 급강하. 그나마 조금씩 급강하 속도가 줄고 있는 게 다행이려나.




지금 이 순간, 깨닫는다. 나는 다시 의자에 엉거주춤 앉아있다. 오른쪽 다리를 꼬는 고질병도 도졌다. 골반에 미안하다는 둥 서서 쓴다는 둥 블라블라한 게 얼마나 됐다고, 나 원 참. 발레 역행자의 수행은 머나먼 여정이로세.

그래도 그 여정은 즐겁다. 못하지만 재미있다니. 그 자체가 인간 본성에 역행하는 거 아닌가. 내 마음과 본성이 시키는 대로 몸을 혹사하지 않은 육체적 역행자의 길은, 누군가에겐 수영 또는 헬스이겠지만 내게는 발레가 나침반이다. 고맙다.

내 몸을 더 알고 더 잘 쓰는 일, 편하게 퍼져있고 싶은 마음을 거슬러 본성에 역행하는 일. 그렇게 하면 육체적 자유에 조금씩 가까워질 거라 확신한다.

왕도는 없다. 나름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는 수밖에. 또 하나, 클래스 전에 몸을 조금이라도 풀고 들어가는 것. 고관절을 느끼고 활성화하고 내 몸의 가동범위를 조금이라도 늘리고 들어가면 확실히 몸은 달라진다.

지난주 마주친, 아름다운 사진. 출처 및 저작권 김윤식 작가님



선생님들을 잘 보고, 조금이라도 그대로 해보려 하고, 그 과정을 꾸준히 계속하면 조금씩 늘어있는 것, 그 재미를 아마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모르겠지. 나도 다다음생 정도엔 모르고 싶다.

다시 일어나서 글을 마무리한다. 내일도, 모레도 코로 보고 등으로 숨 쉬며 엉덩이는 세모로 잡고 풀업으로 웃자. 내 몸은, 우리의 몸은, 소중하니까.

By Sujiney

이전 06화낙담의 골짜기에도 꽃은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