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면 어때, '발레 메타인지'

발라레 인생(37) 99번째 브런치 by Sujiney

by Sujiney

에헴. 경영의 신(神) 고(故) 이건희 회장과 고(故)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회장도 울고 갈 획기적 신입사원 선발법을 창안했음을 밝히는 바이다. 브런치 독자들을 위해 먼저 공개하노니 이른바, '발레 클래스를 통한 인성 및 조직 화합 적성 평가' 되시겠다. 서류 통과 및 상식 및 업무 관련 지식 테스트에 합격한 이들 중, 인성 및 조직 생활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한 방법.
자고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 실력도 출중하면서 조직 생활에도 적합한 인재를 뽑는 것이 기업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데 이견을 제시하긴 어렵다. 그런 면에서 필자가 고안한 발레 클래스 접목 심화 면접법은 순발력과 타인과의 협력 및 도전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상사에 대한 태도는 물론 체력까지 체크할 수 있으니 가히 일석오조(一石五鳥)라 하겠다.

뻥이다, 물론.

그럼에도, 생각은 자주 한다. 발레 클래스로 면접을 보면 꽤 효과적일 거라고.


"춤을 보면 추는 사람의 성격을 안다"는 말이 있다. 무대 밖, 매일의 발레 클래스에서도 그렇다. 초심자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에라 모르겠다"라며 일단 해보고 어떤 이들은 "어쩌면 좋지"라며 울상이 된다. 잘하는 이들 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은연중에 "나 잘하지?"라며 으스대고 어떤 이들은 "열심히 하다 보니 되네"라며 스스로에게 집중한다.


같은 클래스를 듣는 이들에 대한 태도가 가장 잘 나타나는 때가 있으니, 센터워크에서의 차례를 정하는 순간들이다.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육대주 어디에서든 발레 클래스의 구성은 비슷하다. 바워크와 센터워크로 구성되는 원칙은 동일. 바를 치우고 스스로의 중심만으로 추는 센터워크는 클래스마다 순서가 조금씩 다르다. 그 말인즉슨, 처음에 하는 사람은 숙지를 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다는 의미. 둘 또는 셋이 스페이싱, 즉 적절한 거리 두기를 하며 한 조로 진행하는 센터워크에서 모두가 첫 순서를 꺼리는 이유다.


클래스에서 순서 말아먹으면 누워서 싶기도 하지. By Sujiney


결코 잘하지 않음에도 불구, 본진에서만큼은 센터워크에서 처음에 나오는 편이다. 순서를 숙지하고 자신이 있어서? 전혀. 순서를 틀릴 게 거의 100%라고 해도 처음에 나가게 되는 때도 있다. 아무도 처음에 나오려고 하지 않고, 시간은 흐르고, 선생님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서다. 최근엔 아무도 안 나오려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처음에 섰는데, 클래스를 수강한 15명 중 나만 나와서 본의 아니게 솔로가 된 적도 있었다.

안 나오는 마음도, 이해는 한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고. 안타까울 따름. 나중에 한다고 해서 그 짧은 시간 안에 순서를 숙지하기도 사실 어려운 때가 많다. 숙지를 한다고 해도, 본인은 잘하겠다는 욕심에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내보내는 건 솔직히 좀 - 아니, 사실은 꽤나 - 얄미운 처사다.

틀리면 창피하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발레 클래스에서만큼은 창피함은 성장의 열쇠다. 많이 창피해봐야 성장을 할 수 있다. 창피함이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건 아니다. 창피해도 즐겁게 순서를 하고, 다음에 덜 창피하기 위해서 나름의 복기와 연습, 질문을 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 어느 순간 확실히 나아져 있다. 우리 동네 대표 몸치였던 나도 하는 데, 모두들 다 할 수 있다. 일단 해보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진은 소중한 존재다. 여러 학원을 다니다 보면 본진과 제2, 제3의 학원이 생긴다. 나는 본진이 여러 개라고 생각한다. 본진이란 빈도로만 정의하고 싶지 않아서다. 얼마나 자주 가느냐 보다는 가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 자신을 그 아름답지만 생소한 일련의 몸짓에 던져볼 수 있는지의 여부가 본진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고 본다. 영어 표현 중 'put it out there' 즉 '불편하거나 어려운 상황이지만 꺼내서 던져보는 것'을 할 수 있는지 여부.

카페콤마 연남점의 귀여운 이벤트, 손뜨개 네잎클로버. 발레슈즈 키링에 살포시 달았다. By Sujiney


여기에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왜 창피한가. 감정의 이름이 단서다. 찾아보니 창피라는 것은 순우리말이 아닌 한자어다. 창피(猖披). 고려대한국어사전의 뜻풀이는 아래와 같다.

"체면이 깎이는 일이나 아니꼬운 일을 당함. 본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고 옷매무새를 단정하지 못하게 흩트린 모습’을 가리키던 말로, 중국 전국 시대의 문필가 굴원(屈原)이 쓴 ‘이소경(離騷經)’에 나오는 말이다. (중략)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왕이 나라가 망하는 순간에 품위와 체통을 잃고 당황하는 모습을 나타낸 말."

요약하자면, 품위를 잃고 당황하는 것이 곧 창피하다는 의미. 성인 취미 발레 클래스는 어찌 보면 창피의 연속이다. 발레라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과정이 아름다움과는 대척점에 있다는 건 공교롭다. 하지만 어쩌랴. 프로 무용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밟아 체화한 아름다운 동작을, 성인이 되어 배운다는 것부터가 무리다. 영상 속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춤선은, 클래스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선 찾기 어렵다. 아름다움은커녕, 어려운 동작을 소화하느라 낑낑대며 품위를 잃고 당황하기 일쑤.

그런데 말이다. 그럼 또 어떤가. 창피하면 또 어때. 창피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창피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조차도, 창피가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창피함을 마주하는 용기는 소중하다.




창피한 이유. 거울 속 지금의 내 모습이 틀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발전의 첫걸음이다. 틀렸다는 걸 아는 것. 모른다는 걸 아는 것. 요즘 회자하는 '메타인지'와도 연관이 있다. 믿고 읽는 하지현 정신과의사의 북리뷰에서 지난주 다룬 책, '메타인지의 힘'에 따르면, 메타인지란, "자신의 인지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다. 하지현 박사의 북리뷰(출처: https://naver.me/FjjNge3v)에 따르면, "문제 해결의 출발은 내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과 지금까지 알던 지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인데, 바로 메타인지의 한 요소"라고 한다.

하지현 박사 인스타그램 캡쳐. 항상 잘 읽고 있어요.



아무것도 모를 땐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 뭘 알아야 하는지 조차 모르기에, 다 안다고 착각한다. 모른다는 걸 아는 게 앎의 시작인 까닭이다. 창피한 줄도 모르는 것보다, 창피한 줄을 아는 게 창피하지 않음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제대로 된 발레를 배우기 이전엔 솔직히, 내가 못하는 것도 몰랐다. 발레 광복 이전엔, 정해진 극히 소수의 동작의 반복만 해왔던 터라, 무시무시하게도 내가 못하는 줄을 몰랐다. 뭘 잘해야 하는지를, 내가 뭘 못하고 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메타인지를 하게 되어 어찌나 다행인지.

창피해서 다행이다. 창피함의 절대량을 채워야 다음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으니. 쉽진 않다, 물론. 지난달에 썼듯 낙담의 골짜기는 깊고 험준하니까. 그럼에도 창피하기 싫어서 피한다면, 발전은 없다. 발레 클래스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많이 창피하자.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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