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최은영 작가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75쪽 발췌, 문학동네)
누군가를 인용해서 글을 시작하는 건 비겁하다고 배웠다. 첫 직장에서 에디터로 만나 멘토가 된 토비 스미스가 봤다면 "다시 써 와, 롸잇 나우" 했겠지. 그럼에도 이번만 그렇게 하고 싶다. 최은영이어서다.
최은영 작가와 같은 모국어를 쓰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서 행복하다. 그가 펴낸 신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속, 위 문장들을 읽으며, 갈라졌던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최은영 작가마저 이럴진대. 스스로에게 조금은 덜 엄격해져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마음. 오랜만.
재미있는 건, 위의 글에서 '글쓰기'를 '발레'로 바꿔도 무방하다는 점. 아니, '무방'이라는 단어론 부족하다. 딱 들어맞는다.
발레를 배우기 전, 발레는 예쁜 것이었다. 발레를 배우는 지금, 발레는 아름답지만 잔인하고 힘들고 얄밉고 아픈 데 계속하고 싶은 것이다. 최 작가의 표현 그대로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 빨리 나아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대신 꾸준히 계속 옳은 방향으로 걸음을 계속 옮긴다면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나아진다는 것. 때론 넘어지겠지만,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법도 배우게 된다. 최 작가의 말대로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발레인 셈.
최은영 작가 신작. 작가님 만수무강하며 다작해주세요. By Sujiney
발레 광복 후 얼마 안 됐을 때다. 빨리 잘하고 싶은 욕심에 선생님께 "발레 잘하려면 뭘 더하면 좋을까요?" 여쭤본 적이 있다. 나의 우문에 돌아온 선생님의 현답.
"발레를 잘하려면 그냥... 발레를 더 하면 돼요." 유레카. 물론 선생님의 '발레'란, 발레 클래스뿐 아니라 코어를 위한 갖은 근력 루틴과 유연성을 위한 다양한 스트레칭을 포함한 것이었던 것이었지만.
위의 질문을 하던 때엔 더블 턴을 빨리 돌고 싶었다. 지금은 아니다. 목표를 달성했으니까? 천만의 말씀. 화려한 턴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밸런스 컨트롤이라는 걸 깨달아서다. 나만의 밸런스를 깨닫고 제어하고 갖고 놀 수 있어야 싱글턴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많은 선생님들이 한 목소리로 "잘 돌려면 잘 서야 해요"라고 강조하시는 까닭이다. 일단 내 몸을 잘 세워서 발끝으로 서서 균형을 잡고, 원심력을 만들어 돌면서도 균형감을 유지하며 착지까지 깨끗해야 그 턴은 진짜 내 턴이다. 어쩌다 두 바퀴를 도는 로또 턴은 턴이 아닌 것. 발레의 잔인함이란.
쉬워 보인다고? 둘 중 하나다.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또는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처럼 재능을 타고났거나, 발레를 배워보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자하로바와 강수진 단장마저, 쉽진 않았을 터. 쉽지 않은 걸 쉬워 보이게 하는 건 매일의 수련을 오랜 시간 쌓아나간 결과다.
발레 클래스에선 높은 레벨로 올라갈수록 를르베업 밸런스를 선생님들이 많이 넣어주신다. 바워크에서도, 센터워크에서도. 발가락으로만 서서 균형을 잡고 적어도 3초를 균형 잡고 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바워크에선 바에 자꾸 의지하려고 하고, 센터워크에선 의지할 게 없다 보니 흔들흔들. 예전에도 인용한 적 있지만 한 번 더, 조성은 선생님의 명언 소환. "여러분, 밸런스에서 흔들거리면 안 됩니다. 위태로운 건 우리 인생이면 족하잖아요!"
여름이면 꼭 보는 일드 '수박' 중.
밸런스가 힘든 이유. 축다리와 일다리의 관계 설정이 애매하고, 서있겠다는 사기만 충천한 나머지 온몸에 힘을 끙하고 주기 때문이다. 몸을 잘 모르고, 못 쓰는 것.
파세업 밸런스의 경우, 최시몬 선생님 말씀처럼 축다리 무릎 아래는 지하주차장까지 꽂아두고(아래로 작용하는 힘), 무릎 위는 한없이 위로 올라가며 풀업(pull up)해야 한다. 정훈일 선생님 말씀처럼 위로 올라가는 힘과 아래로 꽂는 힘을 운용하면서 몸을 한없이 위로, 위로 더 위로 늘려야 한다. 그러면서 턴아웃은 옵션 아닌 기본, 뒤꿈치는 앞으로, 어깨는 내리고 등등. 다 아는 듯 쓰고 있지만 멀고도 험하다.
그럼에도 불구, 처음엔 0.01초에 불과했던 밸런스를 3~4초까지는 설 수 있게 됐다. 물론 성은 선생님 말씀처럼 흔들흔들 '충치 밸런스'인 경우가 더 많지만. 예전엔 싫기만 했던 밸런스가 이젠 재미있기까지 하다. 잘해서가 아니라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그 과정이 주는 재미가 있다. 최시몬 선생님 말씀처럼, 매달 밸런스 목표를 정해서 조금씩 늘려가야지. 성은 선생님 말씀처럼 를르베업 파세 밸런스를 4초 서면 싱글턴을 클린하게 돌 수 있다. 밸런스를 잡겠다고 몸을 힘주어 누르는 게 아니라, 몸을 늘려주는 것. 결국 밸런스는 중력으로부터의 자유, 그 자체다.
인생도 그렇다. 제일 힘든 건 밸런스, 즉 균형이다. 균형이 무너지면 삶도 무너진다. 세우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순식간. 밸런스를 잡는다는 건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 대한 통제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몸과 맘에 속박되는 게 아니라, 몸과 맘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내 발레와 내 삶의 밸런스는 쉽게 잡히지 않을 터다. 그래도, 계속 잡아본다. 잡다 보면 잡는 과정의 재미가 생기고,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잡힐 거니까. 밸런스가 잡히면 더블 턴도, 훼떼도 돌 수 있겠지. 결국 밸런스는 발레의 기본이다. 결국 기본이 중요하다는, 기본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글.
덧. 밥벌이로 써야 하는 글이 아닌 쓰고 싶어서만 쓰는 글을 쓰는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아 시작한 브런치 스토리. 이번이 100번째다. 매주 한 편씩은 쓰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못 지킬 때도 빈번했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로 시작되는 브런치 스토리 앱의 친절한 잔소리 알람도 종종 받았다. 그럼에도 계속 쓰는 것. 최은영 작가의 아래 말이 다 설명해 준다. 아래의 글에서도 '글쓰기'와 '발레', 그리고 어쩌면 '삶'이라는 단어는, 동의어일 수 있겠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최은영 작가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75쪽 발췌,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