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레벨업도, 인생도, 결국 나름 타이밍

발라레 인생(40) 102번째 브런치 by Sujiney

by Sujiney

고인 물이라고 다 썩기만 하는 건 아니다. 흘러가기만 하면 외려 놓치는 것도 많다. 적어도, 발레학원에서만큼은.

본진 초급반 고인 물인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전제조건은 있다. 고여있다고 해서 가만히 멈춰있지 않을 것. 한 곳에 머무르는 와중에도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것. 발레 천재가 아닌 이상, 아니, 천재라고 할지라도, 연습의 절대량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발레만큼은 모두에게 공평하니까. 인간이 중력을 거슬러 인간 이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선,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단, 그 단계가 상승곡선을 그리는 방식은 한 가지로 정해져 있지 않다. 나름의 속도와 패턴이 있다는 게, 포인트. 왜 나는 저 사람보다 빨리 시작했는데 더디 늘까. 저 사람은 벌써 더블 턴을 도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만큼 성인 취미 발레계에서 의미도, 효용도 없는 것도 없다. '나름'이라는 '다름'은, '틀림'이 아니므로.

나의 경쟁자는 나 자신이다. 강수진 국립발레단장도 자서전에 썼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조금씩 나아져있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고.

그렇다고 안주만 해서는 안 된다. 초급보다는 높은 레벨을 듣고 싶은 엄두를 낼까 말까 생각이 든다면, 바야흐로 온 것이 아닐까. 용기를 내야 할 타이임. 스스로를 과감하게 더 거친 파도에 노출을 시켜봐야 한다.

하기 두려운 걸 해야 한다는'. 랄프 에머슨의 명언. 아는데 어렵다ㅠ 출처=Daily philosopher Instagram


최근 이소정 선생님 인스타그램 스토리 덕에 다시 만난 명언을 떠올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했다는 이 말은, 발레에도 적용된다. "잔잔한 바다는 선원을 훈련시킬 수 없다(A smooth sea never made a skilled sailor)."

거친 파도를 찾아서, 본진 중급반도 용기 내어 들어보기 시작했다. 중급반에서의 내 모습은, 가히 슬랩스틱 코미디 수준이다. 긴장한 나머지 있을 수 없는 실수마저 다반사. 새로 배운 앙쉐느망(다양한 센터 동작의 조합)이면 억울하지나 않지. 어젠 기본 중의 기본, 샷세 그랑제떼 순서에서 발을 잘못 내고 말았다. 왼발을 축으로 삼아 오른발을 앞으로 내야 하는 순서에서, 정확하게 그 반대로 해버린 나. 보다 못한 선생님께서 "괜찮아요, 그냥 일단 하세요"라고 응원해 주시긴 했지만 창피했다. 왜 그랬니, 나 자신아.


그래서 오늘은 백 투 더 베이직, 기초를 다지겠다는 각오로 기초반과 초급반을 연강했다. 그야말로 레벨의 짬뽕.

딱, 이 마음. 사진 속 일력은 댄싱스네일. By Sujiney


기초라서 쉬웠냐고? 천만의 말씀. 기초반이 더 어렵진 않아도 힘은 더 든다. 천천히 모든 기본 동작을 정확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테크닉이라고 해도, 발레의 기본은 플리에와 탄듀다. ABC를 완벽히 숙지하지 않은 상태로 뉴욕타임스(NYT)와 CNN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듯이.

거친 파도만 맞으면 아예 배의 키를 놓칠 수 있으므로, 잔잔한 바다에서 닻을 올리고 키를 잡는 연습을 병행하겠다는 나름의 굳은 의지. 앙디올/앙드당 턴의 차이를 토슈즈 수업에서 물어보거나, 기초반에서 배우는 피케턴을 초급반에 와서 물어보느라 수업 진행을 지체시키면 안 된다. 그건 마치, 통역대학원을 준비한다면서 ABC 순서를 헷갈리는 것과 매한가지다. 성장의 계단을 올라가되, 기반을 단단히 다져가며 가야 한다.

이렇게 모든 클래스가 나름의 방식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건, '웃픈' 일이다. 기초반은 말 그대로 기초를 다지느라 어렵고, 초급반은 더 잘할 수 있는 데 안 돼서 안타깝고, 중급반은 새로운 테크닉을 습득하느라 힘들다. 고급반은, 아예 논외로.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어쩜 이리 얄미울 정도로 인생과 같은지.




미국 발레의 아버지 격인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은 말했다. "발레 동작 중에서 (기본 중 기본인) 플리에와 탄듀를 거치지 않는 동작은 없다." "탄듀를 제대로 배우려면 1년은 걸린다. 그래도 완벽하지 않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 취미와 전공 사이엔 요단강이 흐른다.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인생에도 발레에도 결국, 하나의 정답은 없지 않을까.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지만, 그 타이밍을 정하는 건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남이,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에 자신을 구겨 넣으려다 무리하면 고장이 나기 마련. 발레도 그렇다.


할 게 넘 많은 발레, 너란 녀석! 출처=qld_national_ballet Instagram


물론, 발레의 아름다움은 어딜 가나 같지만, 그 정상에 오르는 길은 각자 다르다. 중요한 건 다른 이를 질투하거나, 부러워하거나,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 남에게 시선을 줄 시간에 나 스스로를 체크하는 게 낫다. 어깨는 내리고 코어는 잡고 갈비뼈는 닫고 축은 세우고 정수리는 끌어올리는 데도 시간이 모자라다. 발레는 남의 시선이 있기에 완성되는 예술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내일은 초중급과 초급의 날이다. 내일만큼은 파드부레를 틀리지 않겠다고, 굳은 결의를 다진다. 그럼에도, 나는 또 틀릴 수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거친 파도에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그러면서도 즐거움을 찾아가면서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오늘의 나를 다독여 내일의 나로 나아가야지. 여러분도 각자의 전장에서 힘내시길, 따스한 응원을 보낸다. 이제 샷세 연습하러 총총...앗 또 틀렸...ㅠ 다시!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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