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야 힘이 나지” 발레는 인생(2): 그랑주떼

브런치 시즌2(54) by SJ

by Sujiney

“날아가!”


지난주 목요일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But 마음만 날아가는 나를 보다 못한 선생님의 특단의 조치.


엎드리셨다.

내 앞에.


나를 뛰어넘어!”

라고 하시며.


증거 캡처 사진(영상은 차마^^;).

By SJ


지금 내가 뛰는 그랑 주떼의 높이로는 넘사벽이다.

그걸 가장 잘 아는 분은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하신 특단의 조치에 눈물이 났다. 난 누군가를 위해 저렇게 무릎을 꿇어본 적이 있었던가. 감사합니다 선생님.


결국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나.

선생님 옆으로 엉거주춤 코믹 점프를 시전, 클래스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말았다ㅋ


일어나신 선생님.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씀.


“왜 그렇게 겁을 먹어. 높으면 얼마나 높다고. 괜찮아.”


사실 이날 나는 괜찮지 않았다.

솔직히, 꽤나 위축이 되어 있었다. 바로 전 기초반에서 업계 후배를 마주쳤고

그의 아름다운 그랑 주떼와 나의 부끄러운 그랑 주떼가

비교됐기 때문.


내가 김현우 원장님께 너무도 듣고 싶은 딱 두 글자 “옳지!”를 그 친구는 곧바로 들었다.

솔직히 넘넘넘 부러웠다.

그리고 그간 수년을 왜 그리 허송했던 것인가 통탄했다.


그랬던 그 바로 다음 시간. 그랑 주떼 뛰는 게 더 싫었다. 이런 못난 생각이 들어서.


잘하는 것만 하고 싶어!


이전 학원에서 바 워크와 스트레칭은 주야장천 했던 터라(그랑 플리에 같은 고난이도 동작은 싹 빼고) 그건 좀 자신이 있는데… 그것만 하면 나름 멋져보일 거 같은데…이런 오만 못난 생각을 하다 이날 바 워크도 제대로 말아먹...ㅠ 어느새 클래스 중 센터의 하이라이트, 그랑 주떼. 역시나 선생님께선 “힘을 좀 빼고 점프를 더 해야죠!”라고 성심 성의껏, 앤드 목청껏, 지적을 해주셨다. A를 쳐다보지 못했다. 찾느라 바빴으므로, 쥐구멍을.




그 친구(편의상 A)는 우리 발레조아 학원의 명성 덕에 시간이 맞는 반을 찾아 어쩌다 기초반에 온 거였다. 내가 이전 홍대 모 발레학원에 수년을 다녔다는 걸 알고 있었고,

서로 발레복 입고 만난 건 처음.


처음엔 몰랐다.

클래스 전, 몸을 풀고 있는데 눈썰미 좋은 A가 (KF94 마스크 착용 중인데도 어찌 알아보고) 내게 물었다.

“혹시…OO일보 OOO 선배 아니세요? NSY 다니시지 않아요? 왜 여기...?

깜놀한 난 답했다. 짐짓 대범한 척.

거기, 얼마 전 탈출했어. 여기 다닌 지 몇 주밖에 안 됐는데, 내가 너무 못하는 모습에 충격받지는 말아줘.”


이 자격지심, 어쩔…


사실 난 꽤나 뻔뻔하다.

뻔뻔함을 겨루는 올림픽이 있다면 3연패 정도는 거뜬히 할 자신 가득. 하지만 나보다 늦게 발레를 시작한 A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건 좀 많이 (고상한 표현 따위 여기에선 어울리지 않는다) 쪽팔렸다ㅋ


하지만 그날 밤 귀가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서는 다시 뻔뻔해졌다. 뭐 어때. 그랑 주떼로 대학 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쪽팔려한다고, 괴로워한다고 나의 그랑 주떼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그건, 매번 레슨에 최선을 다하며 조금씩 나도 모르게 나아지는 거야. 쪽팔릴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적어놓은 발레 노트를 들여다보자.


발레 천재 짱구♡


그럼에도

위축된 건 어쩔 수 없었다.


바로 다음 기초반 수업,

A는 없었지만 나는 그랑 주떼 순서 전, 속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잘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과,

잘 못할 게 뻔한데, 라는 걱정으로 뒤범벅이 된채.


바로 그때였다. 선생님께서 (발레 선생님들은 다들 왜 이리 촉이 좋으신 것인가!) 내 마음을 읽으시고, 엎드리신 것.


이 담대한 티칭은 내 기분과 표정의 무거움을 일거 날려버렸다. 다른 회원들 모두 까르르 웃고, 나도 까르르 웃고, 쥐구멍 따위는 개나 줘버려(개에겐 쏴리)!


그리곤 기적이 일어났다.

그다음 클래스. 마음이 편해진 나는 그랑 주떼 순서 앞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즐겨보자!


그리곤 들었다.

선생님의 '옳지!’


물론 제대로 다 뛰었던 건 아니다. 선생님께선 “오, 조금 뛰었어! 그 느낌을 잘 기억해둬요”라고 하셨다.

나도 느꼈다. 몸이 조금 붕~ 뜨는 기분.


코어 근육을 잡고 호흡을 잡고 점프를 하자 오 마이 갓, 내 몸이 중력을 거스르는 게 느껴졌다. 찰나였지만 임팩트 만점.


그랑주떼의 정석. 올해 로잔콩쿠르 여성 1위를 해낸 자랑스러운 한국 소녀 윤서정 양♡ 기사는 여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992379#h


내 그랑 주떼의 가장 큰 문제는 이거였다.


온 몸에 힘을 너무 많이 잔뜩 준다는 것.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온 몸을 긴장하고 뛰다 보니 공중으로 날기는커녕 무겁기 그지없는 점프가 된다는 거였다.

선생님 왈,

“몸에 필요 없는 힘을 빼야 제대로 힘을 낼 수 있어요!”

발렐루야.

발레 성경책이라도 만들고 싶은 이 기분.


물론, 다음 시간에도 내 그랑 주떼는 비슷한 수준일 거다. 하지만 나는 계속할 거다. 몸에 필요 없는 힘을 빼고. 어깨는 펴고 호흡으로 몸을 다스리며 중력을 거스르는 것. 꾸준히 내 몸속에, 내 의식 속에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가면 언젠가, 바라건대 곧, 될 거다. 그리고 언젠가 A를 순도100% 웃음으로 맞을 수 있을 거야.


시 모임 명패s.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메일 pls 누구든 환영. by SJ


지난주, 우리 동네 연희동 언덕배기 모자가게, ‘두두모자’에서 27일 시작한 시(詩) 모임에서 닉네임을 정하라고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이렇게 정했다.


그랑 주떼.


두두님은 자꾸 ‘그랑조’ ‘그랑블루’ 이렇게 헷갈리셨지만 그래도 뭐 어때.


몸에 힘을 빼자.


잘하고 싶은 것만 하면 결국

못하게 된다.


발레는 인생이다.


By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