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수나문!" 이 다섯 글자에 사막의 모래바람과 치정극이 연상된다면, 반갑다. 영화 '미이라'(1999)의 이 장면을 안다는 것만으로 우린 동시대를 공유한 동지. 금지된 사랑으로 영원한 잠에 빠진 연인 아낙수나문을 목놓아 부르던 이모텝이 떠오른 것은, 어디긴 어디야, 발레학원이지. 조성은 선생님의 바디 빌드업 시간이다.
영겁의 시간 속에 묻힌 연인 아낙수나문(원래 표기법은 '앙크수나문'이라지만 왠지 어색)을 깨우려는 이모텝의 마음으로 목놓아 부른다. 잠자고 있는 능형근이여, 숨어있는 중부 승모근이여, 언젠가 만날 순 있겠니 전거근이여, 생길락 말락 장요근이여, 굽어질 줄 모르는 흉추여, 이제는 깨어날 시간이라고. 근육과 골격은 어리둥절하겠지. 수십 년간 편안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잘 살아왔는데 주인 녀석, 왜 이제 와서 귀찮게 하나 싶을 거다. 매트 위에서 낑낑대고 헉헉대다 보면 온몸이 재조립되는 듯. 다음날 아침엔 단체기합 받은 마냥 쑤시고 아프다.
이분들이시다. '미이라'의 아낙수나문과 이모텝. 영화 스틸컷.
발레를 몰랐을 땐 내 몸을 내가 안다고 생각했다. 이젠, 내 몸을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내 견갑골 옆에 쏙 들어가 있는, 이른바 '내 등에 블랙홀'도 그냥 그러려니 지나쳤었다. 실은 능형근이 있어야 하는 자리라는 걸 모르고, 견갑골이 더 도드라지니 "흠 내 등근육 좀 괜찮은데"라고 착각까지 했었다는 부끄러운 고백. 모르는 걸 알았으니, 알게 되는 첫 발을 뗀 셈이(라고 믿고 싶)다.
몸을 알아야 몸을 쓸 수 있다. 본진 발레조아에 발레 해부학 책이 놓여있는 까닭. 몸을 잘 쓰는 것도 재능, 이른바 '신체지능'이라고 한단다. 발레는 결국 몸의 움직임을 극대화해서 끌어내는 아름다움이니, 신체지능이 중요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간 골반을 뭉뚱그려 골반이라고만 생각하고 양반다리(골반에 독이라고 한다)를 즐겨했던 나 자신. 반성한다. 화사의 멋진 신곡처럼 'I Love My Body'라고 하고 싶지만 아직 멀었네 그려.
그런데, 왜 하필 아낙수나문이냐고 물으신다면, 혼미한 상태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조성은 선생님 덕분이다. 자신의 몸뚱이를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를 보시고, 뭔가 맘에 딱 와닿는 비유를 찾고 찾으시다 이렇게 외치신 것. "아낙수나문처럼 잠자고 있는 근육을 깨워요"라고. 저도 정말 깨우고 싶어요 선생님, 하지만 이번 생은 안 되나 봐요,라고 포기할 즈음. 신기하게도 조금씩 꼼지락대는 근육과 골격을, 그러니까, 내 몸을 느끼게 됐다. 써봐야 아는 건, 글이나 근육이나 매한가지인 듯.
정훈일 선생님도 이번주 클래스에서 목놓아 외치셨다. "등도 자꾸 써야 늘어요. 몸을 계속 늘리고 못살게 굴어보세요." 느낌표를 쓰지 극혐하도록 훈련받아온 직업이라 마침표를 찍었지만, 현장 분위기로는 느낌표 백만 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율리아 로파트키나는 이렇게 말했다. "무용수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통증을 못 느낀다면 둘 중 하나다. 죽었거나, 전날 연습을 게을리했거나." 마린스키 발레단 꿈나무도 못 되고, 아티튀드 높이는 맥시멈으로 낑낑대면 로파트키나의 20분의 1 정도인 나이지만, 상상 공감 100%.
멀리 러시아까지 갈 것도 없다. 본진 발레조아 선생님들도, 비너스발레 엄규성 원장님도, "아침에 일어났는데 엉덩이와 골반 쪽이 뻐근하면 뿌듯하다"라고 하시니. 아픔은 열심의 흔적인 것. 제대로 된 아픔의 경우. 몸을 잘못 써서 아픈 것, 무리하게 써서 아픈 것과는 다른 종류의 아픔이다.
인스타그램 Stars of Ballet 계정에서 가져온, 율리아 로파트키나 사진. 현 파리오페라발레단 단장인 호세 마르티네즈와 리허설 중이다.
아픈데 왜 할까. 어차피 이젠 몸 이곳저곳이 다 아프다. 발레를 배우지 않는다고 해도 어차피 아프다. 해도 아프고 안 해도 아프다면, 이왕이면 아름다워지는 아픔을 택하고 싶다. 20대 초반까지의 빛나는 젊음이 사라진 후엔, 고통 없는 아름다움은 없다는 걸 체험해 왔기에.
몸을 쓴다는 것을 결국 몸의 가동범위를 늘린다는 것과 일맥상통. 발레를 그냥 힘으로, 운으로 하지 않고 내 근육과 골격을 잘 운용해서 발레를 계속 잘 배우기 위해 필수다. 그간 애먼 곳에 힘을 주면서 어깨를 벽돌처럼 딱딱하게 해서 흉추와 전거근, 중하부 승모근을 제대로 못 썼던 것을 이제야 깨닫는 나는야 몸치 취발러.
여기까지 쓰고 발레 클래스를 듣고 왔다. 복습 영상을 보니, 웬걸.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속 아낙수나문은 여전히 잠자고 있다. 순서를 숙지한 순간엔 그나마 가동범위가 2cm 정도 늘어나지만, 순서를 헷갈리는 순간 유아발레만도 못한 가동범위 시전. 난 진짜 열심히 다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골반은 죽어있고 상부 승모근은 한껏 올라가 있었다.
쉽지는 않겠지. 쉬울 턱이 있나. 쉽게 주어지지 않으니 더 소중한 거(라고 생각한)다. 프로들도 몸을 제대로 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인터뷰했던 올해 프리 드 로잔 콩쿠르 입상자 김시현 학생이 클래스 1시간 전엔 무조건 연습실에 도착하는 까닭. 시현 학생은 말했다. "저는 몸이 느리게 풀리는 편이어서, 무조건 미리 가서 루틴을 해요. 클래스 직전 플랭크도 꼭 하고요." 최시몬 선생님도 말씀하셨다. 클래스 전에 미리 와서 이미 바워크를 한 번 다 끝내고 클래스를 시작하는 무용수들도 있다고. 그날 나는 세상 소중한 시몬 선생님의 클래스에 무려 5분을 늦었더랬지. 그다음 주 연강을 했더니, 확실히 두 번째 클래스에 몸이 더 잘 느껴졌다.
세상만사 내 마음처럼 되는 것 하나 없지만, 그래도 내 몸만큼은 내 맘대로 조금씩 그래도 확실히 변화시킬 수 있다. 내 몸은 결국 내 책임이다. 중년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자기 "몸"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더 맞지 않을지.
화장품으로 얼굴 주름만 펼 때가 아니다. 발레든 산책이든 맨발 등산이든, 내 몸의 목소리를 잘 듣고, 내 몸을 깨울 때다. 그렇게 차근차근 내 몸의 가동범위를 넓히다 보면 내 맘, 나아가 내 인생의 가동범위도 분명 늘어나 있을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