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퍼센트의 이성을 만나는 건, 4월뿐 아니라 춘하추동 언제나 0퍼센트에 가깝다. 하지만 발레 클래스라면 100퍼센트를 만나는 건 충분히 가능.
아무렴, 서울에서 새는 바가지, 도쿄에서도 샜다. 그럼에도 즐거웠던 일본 원정 발레.
2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발레 클래스를, 도쿄에서 찾은 첫 스토리.
차코트 회원증♡ By Sujiney
발레의 성지(聖地), 일본 도쿄 차코트(Chacott) 다이칸야마 본점에서 지난주,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낑낑거리며 5번 포지션을 하고 있는 자를 보셨다면. 부끄럽지만, 나다.
간베 유미코(神部ゆみこ) 선생님의 발레 클래스. 선생님은 내게 "겐차나요"라고 한국어로 말씀해주고 계셨다. 선생님이 무섭거나 내가 혼이 나서 눈물 난 게 아니라, 그 반대. 생전 처음 뵙는 선생님, 국적도 다르고 모국어도 다른 간베 선생님께서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위로해 줘서다.
바워크(barre work) 중 기본 두 번째 순서인 탄듀(일본에선 언어 특성상 '탄쥬'). 햇살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스튜디오에서 뒤꿈치를 앞으로 하고 포인을 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인데, 나는 갑자기 쏟아지는 딴생각에 마음이 칠흑처럼 어두웠다. 탄듀가 끝나고 데가제로 넘어가야 하는데, 간베 선생님은 순서를 내주시는 대신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진 상, 뭔가 고민 있나요? 춤에서 고민이 느껴져요."
추궁하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고민은 없습...아니요, 너무 많아서 하나만 꼽기가 힘드네요."
그러자 선생님의 말씀.
"제가 한국어를 못해도 이 말은 알아요. '겐차나요!' 수진상, 우리 모두 근심 걱정이 많죠. 고민을 해서 고민이 사라진다면 고민을 합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민은 그렇지 않지요? 그럼 우리, 고민에 지지 말고 고민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보는 겁니다. 춤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춤을 추는 사람의 생각이며 기분이 묻어 나온답니다. 발레를 배우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만큼은 지금 여기에만 자신의 100프로를 줘보세요. 즐겁게, 춥시다. 인생, 짧잖아요."
발레 메이트분들도 끄덕끄덕.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 "어차피 인간은 모두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죠. 괴로움투성이인 게 인생이지만 괴로워만 한다면 인생이 너무 아까워요. 발은 탄듀를 하고 있지만 마음은 고민을 하고 있으면 안 돼요. 탄듀에 100%를 주세요."
오 마이갓 선생님. 제가 일본드라마에 빠져서 일본어를 배우기를 잘했다고 이렇게까지 절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발레를 배워서, 용기를 내어 선생님의 클래스를 들어서, 다행이에요.
한국어의 '괜찮아요'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다이죠오부.' 이 말의 한자어는 흥미롭게도, 대장부(大丈夫)다. 선생님의 '발레 할 때는 다이죠오부'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인생의 무거운 고민을 90분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이번 도쿄 여행은 애도의 여행이었다. 많은 곳을 다니며 나는 이미 죽어버린 관계를, 곧 유통기한이 다 될, 여러 관계의 죽음을 애도했다.
하지만 간베 선생님의 말씀 그대로다. 고민한다고 고민은 해결되지 않는다. 고민을 제대로 마주하되, 고민에 침잠되지 않아야 한다. 대장부처럼 괜찮은 나는 내가 스스로 찾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의 100%를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