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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Apr 28. 2024

핑크는 잊어. 검붉은 파멸, 발레 '카르멘'을 경배하라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12회

발레리나를 떠올려 보자. 극한의 청순가련 지젤 또는 오데뜨('백조의 호수'). 사랑스러움의 극치인 오로라('잠자는 숲속의 미녀'). 발랄하고 장난기 넘치는 키트리('돈키호테') 등이 떠오를 것. 그 모든 것의 대척점이 여기있다. '카르멘.' 발레의 전형성과 정반대에 서있는 작품이다.

오데뜨의 순백, 오로라의 핑크는 잊자. 카르멘은 검붉다. 이는 피의 붉은 색에 가깝다. 카르멘을 정의하는 핵심 단어 중 하나가 실제로, 피.  


이상은 무용수 인스타에서 가져옴. 출처 및 저작권 이상은 무용수, 잉글리쉬 내셔널 발레


팜므 파탈(une femme fatale)인 주인공 카르멘은 등장부터 강렬하다. 첫 장면부터 여자들끼리의 싸움이다. 집시 여인 카르멘이 다른 여성과 싸움을 벌이는 것. 한국 막장 드라마에 김치 싸대기가 있다지만 카르멘 역시 만만치 않다. 잉글리쉬 내셔널 발레(English National Ballet)가 이달 올린 '카르멘'에선 여기에서부터 피가 등장한다. 한국의 걸크러시 무용수 이상은 프린시펄(수석)과 강민주 퍼스트 아티스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아래의 장면을 보자.
https://www.instagram.com/reel/C5O24pCIaxk/?igsh=YjQxZGluc3BrMzk1

난무하는 게 피뿐이랴.

치정, 저돌, 담배를 피우는 발레리나, 수위 높은 솔직한 에로티시즘 등. 클래식 발레에선 금기에 가까운 설정과 줄거리가 '카르멘'엔 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무용수로 시작했으나 곧 둥지를 떠나 안무가로 일가를 이룬 롤랑 프티(1924~2011)가 만든 이 작품이, 현대 발레의 첫걸음 중 하나로 꼽히는 까닭이다. 프티가 파리오페라발레단을 떠난 건 1944년, '카르멘'을 초연한 건 5년 뒤인 1949년 영국 런던이었다고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프티의 작품엔 유독 팜므 파탈 캐릭터가 도드라진다. '젊은이와 죽음'에선 아예 여성이 죽음 그 자체다.


꼭 사고픈 DVD. 출처 아마존닷컴, 저작권 Paris Opera Ballet


한국에서도 꼭 보고 싶은 이 작품은 오매불망 기다릴 뿐이지만, '카르멘'은 그래도 갈라 공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5월 16일부터 나흘 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오르는 발레 슈프림 2024에서다.


포스터. by Sujiney



흔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가지려 한 남자의 파멸'로 그려지지만, 이 말엔 동의하지 않는다. 여자는 '갖는' 것, 즉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남자도 마찬가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적시한 유엔 헌장에도 위배된다.

돈 호세가 가질 수 없었던 건 카르멘의 마음. 카르멘의 몸은 일시적으로 가질 수 있었을지라도, 마음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애태우고 피가 끓었을 터. 카르멘의 마음은 자유로운 작은 새와 같다. 이 작은 새는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면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갈구하고, 사랑을 불태운다. 돈 호세는 그 작은 새를 잡으려다 분노의 폭발을 참지 못하고 죽여버린다.

줄거리만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카르멘은 집시 여인. 스페인 세비야의 거리에서 자유로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는 싸움에 휘말려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이지만, 군인 돈 호세의 중재로 화를 면한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만, 이 사랑은 돈 호세의 마음을 좀먹는다. 어느날 투우장에서 카르멘을 만난 돈 호세. 스타 투우사를 유혹하는 카르멘을 보자마자 피가 거꾸로 솟고, 카르멘과 다투다 그만 죽여버린다. 망연자실한 돈 호세. 막은 내려간다.

한국에선 아직 귀한 '카르멘'. 이 작품을 볼 수 있는 5월을 기다린다.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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