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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jiney Jun 09. 2024

영원하지 않아, 그래서 아름답지. 발레도, 인생도.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18회

아름다운 건 왜 슬플까. 나이가 많아지면 눈물도 많아진다더니. 발레로 가득한 6월 첫 주를 보내며 유독 행복했고 유독 많이 울었다. 6월 1일 유니버설발레단의 '더 발레리나'의 클래스 장면에서도, 6월 6일 대한민국 발레축제 '발레 레이어'의 '파 드 캬트르(Pas de Quatre)'의 정제된 아름다움에도, 6월 7일과 8일 국립발레단의 열정 그 자체인 '돈키호테'를 보면서도. 줄거리 때문에 슬픈 게 아닌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

결국 절대적 아름다움은 찰나에 불과하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끝이 난다는 것. 끝날 것을 앎에도 그 순간을 위해 일상의 매 순간을 바친다는 것. 그래서 발레는 어렵고도 힘들고, 그럼에도 아름답다. 사라질 걸 알지만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최고의 모습을 표현한다는 것엔 숭고함이 있다.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에서 사진 및 영상 크리에이터로 변신한 박귀섭 aka BAKI 작가가 지난 봄의 초입, 인터뷰에서 해줬던 말이 떠오른다.

"항상, 시간을 생각한다. 사진은 0.01초의 찰나를 포착한다. 무대 위에서의 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다.반면 영상은 많은 순간을 압축한 시간이다. 찰나의 춤, 사진 그리고 영상의 접점을 찾고 싶다."
(인터뷰 전문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0475)    


2024년 상반기 발레계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 '파 드 캬트르' 주역들과 김용걸 예술감독.



6월 6일 관람한 대한민국 발레축제의 '발레 레이어' 중에서도 '파 드 캬트르'는 이미 끝난 것을 되돌려냈다. 수석 무용수로 무대를 호령했으나 퇴단한지 오래인 발레리나 4인을 한 무대로 모았다.


매거진의 지난 호에도 썼지만, 이들 4인의 발레리나는 이 무대로 복귀하는 것 자체에 고민이 많았다고 내게 털어놨다. 하지만 한 번 결심을 한 뒤엔 후진은 없었다. 끊임없는 연습의 직진이 있었을 뿐. 내게,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이들은 발레 첫사랑. 발레라는 장르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할 무렵 수석 무용수로 만났던 이들을 다시 무대에서 만난다는 건, 첫사랑과의 조우였다. 그렇기에 더욱 애틋하고 애잔했겠지.          





'돈키호테'는 또 어떤가. 웅장하고 폭발하며 발산하는 에너지의 이 발레는 국립발레단만의 버전으로 지난해 다시 태어났다. 송정빈 무용수 겸 안무가의 작품. 발레라고 하면 떠오르기 마련인 '백조의 호수'부터 '잠자는 숲속의 미녀'까지, 대작을 만들어낸 마리우스 프티파(1818~1910)의 버전을 손 본다는 건 쉽지만은 않았을 터. 그럼에도 송정빈은 해냈다. 발레의 특성상 나이 많은 돈키호테가 주인공이 아닌 기존의 '돈키호테'에 개연성을 부여했다.      



하필 와인 이름이 '마리우스'. by Sujiney


돈키호테를 좀 더 전면에 내세우며, 단순히 훼떼 32바퀴의 테크닉이 아닌, 하나의 완결성 있는 스토리로 재탄생 시킨 것. 지난해 버전에서 올해 버전은 더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군무가 더 생동감 있고, 이야기의 연결성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앞으로 또 어떻게 발전할지가 기대된다.

제아무리 '돈키호테'라 해도, 역시 끝은 난다. 언뜻 들으면 길 것 같은 125분의 공연 시간 역시, 마지막 그랑 파드되(주역의 2인무-각자 솔로-2인무)가 끝나면 "벌써?"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무대의 막은 내려가야 한다. 웃고 울고 감탄하고 분노하고 화해하고, 결국 막은 내린다.   



어찌보면 모든 공연은 곧 하나의 삶이 아닐까. 우리네 삶이 죽음으로 끝나듯, 무대 역시 막을 내리기 마련이다.

현실의 우리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도리어 아름다움의 대척점에 서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무대 위의 삶, 공연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밤낮을 땀과 눈물로 보내는 무용수들과 스탭들이 있기에 절대적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음을.

결국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다운 거겠지. 발레도 인생도.
그러니 묵묵히 최선을 다하자. 매 순간 매 순간.
원하지 않아도 끝, 죽음은 오기 마련이다.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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