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남자일수록, 발레
발레 10년 차 기자의 17번째 브런치
시작은 토종 영어였는데 갈수록 발레 얘기만 하는 것 같지만, 이번 주도 another 발레 이야기.
지난주 썼던 콩쿠르 도전기에서 발레 리프트(lift)를 잠시 언급했다. 국립발레단 공연에서 한 커플이 리프트에 실패했지만 아름답고 당당하게 웃으며 공연을 마무리했다는 것. 글을 읽어주신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발레리노가 너무 불쌍한 거 아냐? 아무리 가볍다고 그래도, 사람을 들어 올리는 게 어디 쉽나.”
절반만 맞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발레리노가 힘든 건 물론 맞다. 하지만 발레리나 역시 마음 편히 “어서 날 들어 보라니까” 이러고 있진 않다. 나름대로 용을 쓴다. 훌륭한 발레리나일수록 더.
이재우 발레리노와 김지영 발레리나. 둘은 실제 공개 연애 중이다. 이재우씨가 13살 연하. 작품명은 '스파르타쿠스.' [뉴시스]
발레리나 커뮤니티를 구글링 해보니 이런 팁들이 나온다.
“리프트를 할 땐 온몸을 더더욱 긴장시키고 호흡을 조절해서 위로, 더 위로 올라가라. 발레리노와 호흡을 맞춰, 공기를 타고 날아가라. 더 가볍게, 마치 깃털처럼.”
사람 간 관계도 마찬가지. 누군가가 나에게 뭔가를 해줄 때, 가만히만 있으면 시너지가 안 난다. 함께 호응을 해주고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때, 최고의 케미스트리가 나오지 않나.
리프트는 발레리나 입장에서도 상당히 긴장되는 순간이다. 부상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 그럼에도 상대를 향해 나의 모든 걸 던지고 날아오르는 것, 그게 리프트다.
한 손으로 상대를 들어올리는 고난이도 리프트. 현존하는 최고의 발레리나 중 하나인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안드레이 우바노프다. [유튜브 캡처]
딱 한 번, 리프트를 당해(?) 본 적이 있다.
우리 학원에서 원장님의 안무로 3막 공연을 올렸던 때. 많이 부족하지만 감사히도 주역으로 발탁을 해주셔서, 당시 학원의 청일점이던 전공생 발레리노 워너비와 파드되(pas de deux)를 춘 적이 있다. 당시 리프트의 가장 기본인 허리 잡고 들어 올리기 리프트가 있었다. 처음엔 합이 안 맞아 허리도 아프고 그 친구도 고생 많이 했다. (미안해서 이 악물고 감량을 해서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그러다 연습을 하며 서로 합을 맞추자 위로 올라가는 순간에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 가벼웠기 때문. 파트너의 호흡에 내 호흡이 더해지면서 더 위로 올라가는 탄력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맛보았다.
하늘을 나는 기분을.
태어나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발레 리프트 잘하는 법’으로 나온 유튜브 영상 중 하나엔 이런 말이 나온다.
“발레는 물리학입니다. 근육량이 많다고 발레리나를 잘 드는 게 아니죠. 둘 사이의 합(合)이 잘 맞아야 해요. 몸무게가 아무리 가벼운 발레리나라고 해도, 근육이 아무리 많은 발레리노라고 해도 서로 케미가 맞지 않으면 리프트를 할 수 없어요.”
상대방의 상황을 살피고, 배려하고,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게 리프트다. 그러니 발레 커플 중에 실제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발레 잘하는 남자, 좀 더 넓게 보면 춤 잘 추는 남자가 멋진 남자고, 연애도 잘하지 않을까.
한국에선 덜 알려져 있지만 세계에선 가장 핫한 남자인 이탈리아 미켈레 모로네(Michele Morrone)가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한 영상을 보자. 파트너를 리프트 하고, 적절히 끌어당기며 춤을 추는 장면에 전 세계 여성들이 지금 녹아들고 있다. 춤 잘 추는 남자는 대개 멋있다. 상대를 배려하는 진짜 남자이니까.
이틸리아판 'Dancing with the Stars'에서 삼바 무대를 선보이는 예카트리나 바가노바와 미켈레 모로네. 바가노바는 발레도 전문가 수준이다. [Vimeo 캡처]
에헴, 다시 발레로 돌아와서.
각종 발레 리프트 동작이 종합 선물세트로 등장하는 대표적 작품인 ‘돈키호테’의 하이라이트 영상 링크를 공유드린다. 발레를 위해 태어난 러시아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여주인공 키트리로 열연한다. 남자 주인공인 바실리 역은 역시 러시아의 안드레이 우바로프.
한 손으로 발레리나를 들어 올리는 리프트부터, 발레리나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뒤, 살짝 손을 떼고 발레리나를 내려오게 한 뒤, 땅에 떨어지기 바로 직전에 잡아서 다리를 자신의 허리에 감게 한 뒤 고정시키는 일명 ‘푸와송 리프트(poisson, 물고기)’ 리프트의 교과서다. 영상에선 약 4분께부터 나오는 동작이다. 링크 열기도 귀찮은 분들은 아쉽지만 아래 사진만 보셔도 느낌은 올 거다.
자하로바 여신님, 존경합니다. [유튜브 캡처]
자하로바와 우바로프는 “이렇게 쉬운 것쯤이야”라는 듯 웃고 있지만, 속지 말자. 이들은 첫째 하늘이 내려주신 재능을 타고났고 둘째, 채 10살이 되기도 전부터 하루에 적게는 8시간을 발레를 연습해왔다. 자하로바가 아무리 체지방 제로에 가까운 여신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키가 170cm가량인 장신이다. 그런 자하로바를 저렇게 깃털 다루듯 리프트 한다는 것은 피나는 연습의 결과일 것. 박수를 보낸다.
보너스 하나. 발레 공연을 가면 언제 박수를 쳐야 하는지 모른다는 분들이 있다. 이 리프트가 나오면 무조건 박수를 보내주시길. 단, 푸에테 32회전 등엔 턴 중간에는 박수를 삼가는 게 좋다는 게 발레토만(balletomane), 즉 발레 애호가들의 컨센서스다.
왜? 32회전을 돌기 위해선 음악에 맞춰, 자신만의 리듬을 타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관객들의 그야말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쏟아진다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턴을 다 돌 때까지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다린 뒤, 끝나는 순간, 발레리나가 ‘아, 해냈어!’라는 그 표정을 지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세례를 보내주면 좋다. 이 영상의 12분 30초쯤부터 나오는 그 유명한 푸에테 32회전에서도 관객들은 숨죽여 바라본다. 중간에 약간의 박수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이내 멈춘다.
발레에서만 리프트가 있나. 우리 일상에서도 수많은 리프트가 있을 터. 최고의 리프트를 위해 나를 내던질 용기를 잃지 말고, 상대방과의 호흡을 맞출 때 나오는 시너지를 오늘도, 내일도, 만끽하시길. 60분은 길지만 60년은 짧으니까.
By S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