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다운 발레를 배운지 이제 약 반 년. 그 전까진 바(barre)를 움켜쥔 채 우람한 어깨와 우뚝 솟은 승모근으로 버티며 밸런스를 잡았다. 지금은 나 자신의 발등과 발등, 무릎과 허벅지 안쪽 등과 코어의 힘으로 서는 연습 중. 몸을 (예전보단) 제대로 써서 그럴까. 지난 6개월 동안, 체중은 약 6kg 줄었는데 근육은 외려 늘었다.
인바디 위에 서서, 생각한다.
몸은 정직하네.
쓸데없이.
누군가 물었다. 발레가 왜 그렇게 좋아? 짐짓 호기롭게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맞춰서 예쁜 옷 입고 춤 추면서 운동하는 거잖아”라 답했다. 뭔가 개운치가 않았는데, 그날 밤 이불을 덮고 나서야 이 답이 떠올랐다.
내 몸에 내 맘을 100% 줄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다는 말.
내 몸이 내 맘에 우선하는 시간이자,
내가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이 말은 결국 남과는 거리를 둘 수 있어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우리말로는 내 역부족 때문에 양껏 표현이 안 되지만, ‘alone’은 좋은데 ‘lonely’는 싫은 상태에 발레가 딱이다. 고독은 좋은데 외로운 건 싫다고 해야 할까. 따로 또 같이 하는 게 취미 발레다. 직업으로서의 발레는 물론, 다른 얘기.
우울한 글 읽느라 힘드실 독자님을 위한, 국립발레단의 '주얼스' 한 장면. Copyright 국립발레단
발레를 하면 이 느낌을 피할 수 없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구나. 내 맘은 내 몸을 마음대로 못하는구나. 말그대로 체감(體感)한다.
사회생활이랍시고 하면서 세치 혀를 타고 나와 남을 속이며 도망쳤던 내 맘은, 발레학원 전신 거울 앞에선 도망칠 곳이 없다.
거울에 비친 전신(全身)과 전심(全心)을 직면하며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중력을 거스르려고 노력하며 동시에 최대한 가늘고 길어져야 한다. 바쁘다. 발레를 배우는 시간은 결국은 나라는 인간을 좀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보고자 낑낑대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시에 내가 믿을 것은 나밖에 없음을 재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barre)와 바닥(floor)은 활용을 하는 거지 의지를 하는 존재가 아니다.
혹은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겠다.
몸을 위해 맘을 없앨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망가져 있는 마음을 숨기고 싶은 내겐 최고로 소중한 시간.
이번 커버에도 쓴,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무용수 Valentine Colasante Instagram 사진.
이젠 엄청난 기획사 사장님이지만 내겐 2~30대를 빛내준 가수, 유희열이 쓴 노랫말.
“한때는 널 구원이라 믿었었어. 멀어지기 전엔.”
나도 그가 구원인 줄 알았다.
세상 다정한 구원을 나 스스로 찾아냈다며, 그런 나 자신에 취해서 우쭐댔던 시기. 내가 대단한 무슨 선택이라도 받은 존재인 양, 의기양양했던 시기.
아 ㅉ팔려.
구원이 도끼로 변하는 데는,
강산이 한 번 바뀔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발등을 찍히고도 몇 년 간은 바보같이 그냥 멍 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나도 잘못이다. 공인된 사랑의 선의를 너무 믿었다.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도록 내버려둔 면도 있을 터. 세상사 모두 그렇듯, 좀 더 많이 잘못한 쪽은 있어도 한쪽만 잘못해서 벌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아래 사진) 덕에 만난, 그림책.
신현빈 배우의 명연기가 빛난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Copyright: JTBC
사랑은 믿음이다. 그 관계에 대해 쌍방 모두 마음을 투자를 하겠다는 믿음. 그 믿음은 깨지기 쉬운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이젠 더 이상 믿고 싶지가 않다. 믿어 봤자 또 깨질 텐데. 언제 깨질까 노심초사, 어떻게 하면 안 깨질까 아등바등, 그럴 시간에 차라리 거울 속의 나 자신에게 내 마음을 다 주고 싶다. 적어도 나는 나를 믿을 수 있으니까. 믿어야 하니까. 아쌍블레 점프가 지금은 안 되어도 내가 나를 믿고 꾸준히 하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결국 나를 위한 믿음. 믿을 건 (선생님과) 나뿐이라는 확신. 조금은 쓸쓸하지만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확신.
내 중언부언보다, 작가 김연수의 아래 글이 내 마음을 더 잘 표현해준다.
“사랑을 잃고 난 뒤에야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젊음을 닮아 있다. 더이상 젊은이가 아닐 때, 우리는 비로소 젊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젊음은 젊음을 모른다. 사랑도 그렇다. 무지할 때에만 우리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아는 순간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이제 뭔가를 알게 된 사람들, 더이상 천진할 수 없는 사람들, 청춘을 잃고 조금은 늙어버린 사람들이다. “
from ‘시절일기 - 우리가 함께 지나온 밤’
희한한 건, 조금 늙고 나니, 믿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찾아온 안온함이다. 삶이 더 정돈된 느낌. 설렘은 없지만 편안하달까. 발레 시간도 너무 즐겁고, 좋은 선생님들 덕에 늘어나는 속도도 지난 수년보다 최근 6개월이 더 빠르다.
사랑도 체념했다. 길에서 죽고 못 사는 것처럼 서로만 바라보는 커플을 보면 이젠, 그냥 예쁘다. “너희 2년 후에도 그렇게 계속 예쁘기를 바란다”고 되뇐다.
열등감 때문은 아니다. 해봤는데 실패한, 그래서 그 전장에서 아예 물러나 도망친 병사의 열패감에 가깝다. 남을 믿는 달콤한 기대도 씁쓸한 배신도 차단한 결과로 얻은 산뜻한 외로움이다.
여하튼 이젠 더 누구도 믿고 싶지 않은 나.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에서 만난 동화책 ‘마음이 아플까봐’에 나오는 아이처럼 나는 내 마음을 병 속에 넣어 놓기로 한
했다. 그리곤 거울 속 내 몸에 집중.
그래서 최근 이 말을 들었을 때 꽤나 당황했다.
“저를 믿으세요.”
주말 작품반 호아나 선생님이 최근 마련해주신 파드되(Pas de Deux, 2인무) 특강의 발레리노 선생님 말씀이었다. “내일도 해는 서쪽으로 집니다”처럼 담담하고 쾌적한 말투.
혼자 하는 게 좋아서 발레를 한다고 장광설을 늘어놓은 나에게도 파드되는 거부할 수 없는 로망이다.
발레리나 역시 자신의 축을 확실히 세우고 있어야 이 자세가 제대로 나온다. 남자만 믿었다간 낭패. Copyright: 마리아 호레바, 호아나발레(Hoana Ballet)
호기롭게 신청을 해놓고 사실은 벌벌 떨었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혼자도 잘 못하는 걸 둘이 하겠다고 나서다니. 리노님들에게 민폐만 끼치겠다, 등등. 남초 사회에서 일하며 볼꼴 못 볼꼴 다 본 나이지만, 파드되라니.
평생 발레 스승 김현우 발레조아 원장님께서 가끔 단체레슨임에도 불구하고 파드되 체험을 시켜주실 때가 있는데 세상 송구한 시간이다. 내 비루한 코어는 너무 무겁고 호흡도 제대로 쓰지를 못하기 때문에. 긴장을 해서, 어떻게든 선생님께 누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으면 역효과가 나게 된다. 긴장을 해서 힘을 주기 때문에 내 몸이 더 무거워지는 거다. 선생님 얼굴은 땀 범벅이 되신다. 무려 1월 엄동설한에도.
그런데 파드되 특강이라니.
홀 뒤에서 엉거주춤 우물쭈물 쥐구멍을 찾는 내 차례. 리노 선생님은 문제의 그 말을 꺼내셨다.
“괜찮아요. 저를 믿으세요.”
남을 믿지 않겠다는, 나만을 믿겠다는 다짐은 오만이었다. 파드되는 상대가 있는 춤이다. 상대를 믿어야 상대와 춤을 출 수 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을 병 속에서 꺼낼 수 있었다. 발레가 아름다운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나를 내려놓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남을 안 믿겠다는 내 마음 따위, 지금 이순간 여기에선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한 가지.
상대를 믿기로 했다고 해서 100% 의지해선 절대 안 된다. 상대가 나를 잡아주려면 내가 먼저 나를 잡아야 한다. 리노 선생님은 “어깨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라고 더듬거리는 내게 “제 어깨를 바(barre)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우문현답을 주셨다. 그래, 바에 의지하는 게 아니듯, 파드되 상대에게도 일방적으로 의지를 하면 안 된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밸런스를 잡고 춤을 춰야 상대가 나를 들어올리고 돌릴 수 있다.
한마디로,
남자만 믿고 의지했다간 망신살 뻗친다, 는
만고의 진리.
상대의 손을 너무 꽉 쥐거나, 내가 내 코어를 제대로 잡지 않고 호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 무게를 온전히 상대가 감당하게 되고, 결국 춤의 중심은 무너진다.
호아나 선생님은 그래서 계속 강조하셨다.
“내가 내 축을 똑바로 세우고, 상대를 배려하며 춰야 해요.”
'해적' 그랑 파드되 중. 내가 이걸 했다는 얘긴 네버 에버 아님. Copyright: 마리아 호레바, 호아나발레(Hoana Ballet)
난생 처음 파드되 수업을 앞두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서 얼굴이 빨개졌던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한 번도 파드되 수업을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파드되 수업을 들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병 속에서 꺼낸 내 마음을 토닥거려 본다. 어쩌면 사람을, 사랑을 다시 믿어도 될지도 모르겠다고. 대신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만약 사랑이 다시 온다면 그 사람이 내게 구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로. 누가 누구의 구원이 되어 주는 대신, 서로가 서로의 바(barre)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그러면서 서로의 호흡이 더해져 더 높이 날고 더 정확히 밸런스를 잡을 수 있는 관계를 도모하기로.
애정하는 소설가 최은영의 근작 ‘밝은 밤’ 중 아래 구절로 마무리.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 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중략) 깨끗하게 씻어서 (중략)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